‘생수 할아버지’ 회장님의 꿈…화담숲, 마침내 숲이 되었다

  • 카드 발행 일시2023.11.01

국내여행 일타강사③ 경기도 광주 화담숲

세상에는 이런 수목원도 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명품 수목원을 지어놓고 사람들 많이 온다고 걱정하는 수목원. 은근슬쩍 문을 열고서는 시치미 뚝 뗐던 수목원. 모양 꾸며 얼굴 내미는 게 미덕인 세상에서 생색은커녕 내색도 안 하는 수목원. 굴지의 대기업 회장님이 기울였던 정성과 관심을 어떻게든 감추려 했던 수목원. 그리고 무시로 수목원을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회장님 행세를 안 했던 회장님까지.

경기도 광주 곤지암 리조트 옆 ‘화담숲’은 여행기자가 배운 수목원의 상식을 낱낱이 거부하는 수목원이다. 지금은 입소문을 타 명물이 됐다지만, 2013년 공식 개방 전부터 지켜봤던 나로서는 화담숲의 잇따른 기행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화담숲은 이름부터 수목원이길 거부한다. 수목원이 감히 숲 행세를 한다. 수목원의 반대말을 아시는가. 내가 알기로는 숲이다. 풀과 나무가 스스로 이룬 자연이 숲이라면, 자연에 사무친 인간이 작정하고 흉내 낸 자연이 수목원이어서다. 화담숲이라는 이름에는 별을 따려는 아이의 마음 같은, 이룰 수 없는 무언가를 꿈꾸는 순수한 영혼 같은 게 깃들어 있다.

십수 년을 헤아리는 화담숲과의 인연을 들려드린다. 하필이면 단풍 좋은 이맘때 화담숲 얘기를 꺼내는 건, 화담숲이 국내에서 가장 많은 단풍나무 품종을 거느린 수목원이어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화담숲은 11월이 가기 전에 문을 닫는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장사를 접는 건, 화담숲이 일삼는 또 하나의 ‘탈(脫)수목원적’ 행태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내 수목원이 엄동설한에도 나무에 전깃불을 비춰 가며 손님을 받고 있어서다. 이제야 고백하는데, 화담숲에 밴 회장님의 사연을 알았을 땐 잠깐 재벌이 되는 꿈을 꿨었다. 풀과 나무와 새를 사랑하는 재벌. 어째 형용 모순 같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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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시작

경기도 광주 화담숲의 조형물. 화담숲을 나가기 직전 다리 모양의 조형물을 지난다. 동그란 구멍을 낸 조형물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사진과 같은 '소나무 우주'가 펼쳐진다. 손민호 기자

경기도 광주 화담숲의 조형물. 화담숲을 나가기 직전 다리 모양의 조형물을 지난다. 동그란 구멍을 낸 조형물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사진과 같은 '소나무 우주'가 펼쳐진다. 손민호 기자

화담숲이 처음 문을 연 건 2011년이다. 정상적인 개방은 아니었다. 곤지암 리조트 스키장 옆에 수목원을 들여놓고 리조트 투숙객에게만 입장을 허용했다. 그런데 소문이 나버렸다. 언론 홍보는커녕 SNS에도 소개된 적 없었는데, 알음알음 알고 찾아온 사람이 허구한 날 줄을 섰다. 2013년 6월까지 약 25만 명이 수목원을 다녀갔다.

뜻밖의 비경 출현에 여행기자는 몸이 달았다. 당장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곤지암 리조트는 취재를 완강히 거절했다. 하도 귀찮게 구니까 구경은 시켜줬다. 그러나 보도는 막았다. 여러 번의 실랑이 끝에 곤지암 리조트 박규석 대표이사를 만났다. 2013년 6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