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겨울도 아닌 딱 이맘때…11월에 우린 중산간 가야 한다

  • 카드 발행 일시2023.11.08

국내여행 일타강사④ 제주도 중산간

제주 중산간은 11월을 닮았다. 중산간은 산도 들도 아닌 공간이어서, 가을도 겨울도 아닌 11월을 닮았다. 중앙포토

제주 중산간은 11월을 닮았다. 중산간은 산도 들도 아닌 공간이어서, 가을도 겨울도 아닌 11월을 닮았다. 중앙포토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길바닥 뒹구는 낙엽이 아름답고,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이 아름답고, 늙은 절집의 빛바랜 단청이 아름답고, 물 빠진 갯벌이 아름답고, 해어진 운동화가 아름답고, 유효기간 지난 여권이 아름답고, 허름한 대폿집의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아름답고, 열무장사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이 아름답다. 그리고 11월이 아름답다. 겨울이 오면 사라져 버릴 것들을 겨우 붙들고 있는 시간이어서 아름답다.

11월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늦었고, 무언가를 끝내기에는 아쉬운 달이어서다. 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11월의 서른 날을 우리는 방황하고 후회하다가 보내야 한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계절의 끄트머리에서 단풍마저 제 빛을 잃는 나날을 지켜봐야 하는 시간, 11월에는 그래서 비가 내린다.

예고된 소멸의 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나희덕 ‘11월’ 부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마당을 쓸러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시영 시인의 시편에 이런 게 있다. ‘누가 마당을 쓸고 있다/ 낙엽 흩날리고 날은 벌써 저무는데/ 바람 속에서 누가 자꾸 마당을 쓸고 있다.’ ‘십일월’이란 제목의 이 짧은 시를 나는 11월이 돌아오면 버릇처럼 되뇐다.

이른 아침 제주 동부 중산간의 풍경. 오도독 돋은 희미한 윤곽들이 다 오름이다. 멀리 바다 너머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른 아침 제주 동부 중산간의 풍경. 오도독 돋은 희미한 윤곽들이 다 오름이다. 멀리 바다 너머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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