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대한민국 해안 둘렀다…부산 땡잡은 4020㎞ 이 길

  • 카드 발행 일시2023.11.15

국내여행 일타강사⑤
코리아둘레길 풀 스토리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걷기여행 열풍이 재현되는 분위기다. 코로나 기간 해외로 못 나간 사람들이 400㎞가 넘는 올레길을 다 걷고 있다고 들었는데, 요즘엔 신발 벗고 길로 나온 사람이 별안간 늘었단다. 맨발로 걸었더니 혈압도 잡히고 심지어 암도 치료됐다는 기적의 경험담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자치단체마다 동네 산책길에 황토 뿌리느라 난리도 아니다. 우리 동네에도 4.9㎞ 황톳길 깔았다고 선전하는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우리나라에 걷기여행 바람이 분 건 제주올레의 공이 지대하다. ‘제주올레 전속기자’(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붙여준 별명) 자격으로 조만간 제주올레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룰 예정이지만, 2007년 제주올레 1코스 개장 이후 국내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팩트는 먼저 짚어야겠다. 제주올레의 성공 신화에 힘입어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전국 자치단체도 앞다퉈 트레일(Trail·걷기여행길)을 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재 593개 트레일이 방방곡곡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걷기여행 정보서비스 ‘두루누비’, 2023년 11월).

오늘은 대한민국의 수다한 트레일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고, 가장 많은 예산이 들어갔고, 가장 정치적인 부침이 심한, 하여 가장 이야기가 많은 트레일을 콕 집어 이야기한다. 이름도 거창하다. 코리아둘레길. 이름처럼 대한민국을 다 둘러 버리는 어마어마하고 무지막지한 길이다.

🕵️ 용어 설명 : 트레일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 트레일의 대명사다. 사진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정표. 손민호 기자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 트레일의 대명사다. 사진은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정표. 손민호 기자

트레일(Trail)은 길이다. 원래는 ‘흔적’이라는 의미인데 ‘길’로 확장했다. 꽤 철학적이다. 길을 걷는 건, 누군가의 흔적을 뒤따르는 행위이어서다. 관광학에서 트레일은 여행 목적지로 이동하는 과정 또는 통로가 아니라 스스로 여행의 목적이 되는 길을 가리킨다. 산티아고 순례길, 존 뮤어 트레일, PCT(Pacific Crest Trail)처럼 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여행이 되는 길을 트레일이라 부른다. 하여 트레일은 대체로 길며, 대자연 속에 있다. 이를테면 PCT는 전체 길이가 4265㎞나 된다.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할리우드 영화 ‘와일드(Wild)’가 젊은 여성이 홀로 PCT를 94일간 종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트레일은 ‘걷기여행길’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트레일이란 단어에 여행의 의미가 매겨져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언저리부터 트레일이라는 용어가 국내에서 활발히 쓰였는데 그때는 ‘걷기여행길’로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부가 ‘걷기길’을 더 자주 쓰고 있다. 행정용어의 편의상 줄여 쓰는 것이라는데, 두 글자 줄이는 데 얼마나 편의가 도모되는지 모르겠다. 걷기길이 있으면 뛰는 길이나 눕는 길도 있다는 건가. 한심한 행정 편의주의다. 차라리 트레일을 그냥 갖다 쓰는 게 나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