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우는 고지혈증 걸렸다, 당신이 먹은 ‘투뿔’의 진실

  • 카드 발행 일시2023.10.25

국내여행 일타강사② 팔도 한우 투어 

‘면스플레인’이란 말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다. 돌아보면 꽤 고상한 조어(造語)였다. 사사건건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을 비꼰 페미니즘 용어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면스플레인(면+explain)의 용례도 똑같다.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는, 이른바 ‘면성애자’의 조언 또는 참견을 꼬집는 표현이다. 면에 가위를 대면 안 된다, 식초와 겨자는 초보나 넣어 먹는다, 식초는 면에 뿌려야 한다 등등 기원도 모르겠고 내용도 제각각인 소위 ‘냉면 고수’의 비법이 횡행했었다.

냉면만큼 말이 많은 게 한우다. 과열 양상마저 보이는 지역 간 한우 브랜드 경쟁부터 너도나도 읊어대는 한우 등급과 부위 품평, 고기 구울 때 몇 번 뒤집어야 옳은지에 관한 케케묵은 논쟁까지, 말하자면 한우는 극단으로 치닫는 작금의 정치판보다 더 합의가 어려운 사회적 난제다. ‘한우는 맛있다’는 대명제 말고 한우에 관한 어떠한 컨센서스도 없다는 게 20년 넘게 팔도를 돌아다닌 여행기자의 잠정 결론이다.

그래도 우리는 지난주 서산한우목장 편에서 배운 게 있다. 철저히 통제된 환경에서 사육 중인 씨수소 1마리가 7만 마리의 송아지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육 중인 한우가 355만7000마리(통계청, 2023년 1분기)이니까 한우 50마리꼴로 아버지가 같다는 계산이 나온다. 팔도 한우는, 지역마다 다른 척하지만 비슷비슷한 씨를 대물림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점에서 차갑게 물어야 한다. 아버지가 같은데 고기 맛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 팔도 한우 투어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한우 먹고 다닌다고 배 아파 마시라. 여행기자에게 여행은 없다. 출장만 있다. 세상의 모든 출장은 고달프다.

관련기사

횡성 고깃집에 횡성한우가 없다?

제19회 횡성한우축제 행사 포스터. 선글라스 낀 한우라니. 여느 지방 축제에선 못 봤던 참신한 디자인이다. 횡성한우축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우 축제다. 손민호 기자

제19회 횡성한우축제 행사 포스터. 선글라스 낀 한우라니. 여느 지방 축제에선 못 봤던 참신한 디자인이다. 횡성한우축제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우 축제다. 손민호 기자

10월 6일 강원도 횡성군 종합운동장. 이날 개막한 제19회 횡성한우축제 현장이다. 한우의 고장에서 열린 한우축제여서 횡성한우축제는 여느 먹거리 지방 축제와 격이 달랐다. 900명을 동시에 수용하는 초대형 구이터에서의 ‘떼창 공연’, 우삼겹·홍두깨살 같은 비선호 부위로 개발한 길거리 음식, 횡성한우의 역사와 브랜드를 소개하는 코너까지, 한쪽에서 고기 굽고 다른 한쪽에서 트로트 공연하는 게 전부인 자칭 문화관광축제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축제를 주관한 횡성문화관광재단의 이재성 대표는 “축제 예산이 20억원인데, 구이터·판매장 매출만 26억1000만원을 기록했다”며 “지역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까지 계산하면 매출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횡성한우축제는 5일간 열린 축제장에서만 한우 300마리를 소비했다.

제19회 횡성한우축제에서 선보인 우삼겹 떡볶이. 횡성한우축제는 이른바 비선호 부위를 활용한 길거리 음식을 개발해 판매했다. 손민호 기자

제19회 횡성한우축제에서 선보인 우삼겹 떡볶이. 횡성한우축제는 이른바 비선호 부위를 활용한 길거리 음식을 개발해 판매했다. 손민호 기자

횡성한우는 유명하다. 팔도 한우 중에서 제일 유명하다. 그러나 횡성한우는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니다. 일종의 브랜드, 그것도 샤넬·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다. 이 개념을 이해해야 횡성에서 ‘진짜 횡성한우’를 먹을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횡성에서 먹은 한우라고 다 횡성한우가 아니라는 뜻이다. 횡성축협 유병수 전무의 설명을 들어보자.

“횡성한우는 지리적 개념이 아닙니다. 일종의 자격입니다. 우선 횡성에서 1년 이상 키운 암소가 횡성에서 낳은 수소여야 합니다. 이들 수소는 6개월 이내에 거세하고 30∼32개월 사육한 뒤 도축하는데, 품질 심사에서 1등급 이상을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춰야 횡성한우 브랜드를 달 수 있습니다. 횡성한우 품질 인증은 횡성군청에서 담당합니다. 품질 관리가 엄격해 횡성한우는 다른 한우와 맛과 향이 다릅니다. 다른 한우보다 비싼데도 인기가 높은 이유입니다.”

자랑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유병수 전무의 설명에는 의외의 단서가 담겨 있다. “횡성한우는 비싼데도 인기가 높다”는 발언은 ‘없어서 못 판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이어서다. 안타깝게도, 횡성한우는 횡성에 가도 어지간한 식당에서 먹기 어렵다. 구이용으로 잘 나가는 등심·안심·채끝 같은 고급 부위가 특히 심하다. 이유는 하나. 물량이 달린다. 체중 750㎏짜리 거세우를 잡아도 구위용 부위는 90㎏ 정도밖에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