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구라고 하면 적혈구처럼 단일한 종류의 세포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사실 백혈구는 수많은 종류의 면역 세포를 뭉뚱그려 부르는 말입니다.
다양한 백혈구 중 가장 강력한 건 ‘T세포’와 ‘NK세포’입니다. 암세포도 죽여 없애는 아주 중요한 녀석들이죠. 이 세포들이 없거나 기능이 약해지면 당연하게도 암에 쉽게 걸립니다.
🧾 다룰 내용
① IL-12의 무자비한 암 파괴 능력
② 마스크를 쓴 IL-12
③ 대장암을 녹여버린 ‘복면 IL-12’
④ 인간 대상 임상은 언제?
하지만 암세포는 매우 약삭빨라서 면역 세포의 공격을 교묘하게 피해 갑니다. 인간은 이에 대항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면역관문억제제나 CAR-T 치료제 같은 기법입니다. 모두 암세포의 회피 기술을 무너뜨리는 약제입니다.
하지만 최신 암 치료 기법인 면역관문억제제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면역 세포가 힘을 쓸 수 없는 ‘차가운 종양(Cold Tumor)’을 만날 때인데요. 실제 온도가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면역 세포가 활달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차가운 종양’이란 말이 붙었습니다. 매우 골치 아픈 종양이죠.
다행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암의 얼음 성도 깨부술 수 있는 전사가 우리 몸에 하나 있습니다. 사실 전사라기보다는 T세포와 NK세포 같은 암살자의 투쟁심과 사기를 극한으로 끌어 올려주는 조련사에 가까운 녀석입니다.
이 단백질이 사자후를 토하면 모든 세포가 두려움에 벌벌 떱니다. 즉시 면역 세포들이 광기 어린 살육을 시작하기 때문이죠. 이 단백질 이름은 ‘인터루킨-12(IL-12)’입니다.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공포에 떠는 이유는 IL-12가 적과 나를 구분 못 하는 망나니 기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세포를 죽이는 데 특효이지만, 정상 세포까지 싸잡아 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시카고대 연구진이 이 녀석을 길들일 수 있는 색다른 방법을 성공시켰습니다. 사리 분별을 못 하는 IL-12에게 고삐를 매다는 겁니다. 이를 연구진은 “마스크를 씌운다”고 표현합니다.
코로나 시대, 우리를 답답하게 했던 마스크가 암 치료에선 최첨단 기법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 방법이 성공하면 면역관문억제제도 듣지 않아 더는 방법이 없는 암 환자에게 희망이 돼 줄 수 있을 겁니다. 대체 연구진은 어떻게 IL-12를 길들였을까요. 언제쯤 IL-12를 이용해 약을 개발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