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복 차림으로 30분 달렸다, 늙음 마주한 ‘악몽의 그날’

  • 카드 발행 일시2023.01.20

지난해 이맘때 설을 며칠 앞두고 내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아침 일찍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갖고 들어오려다 현관 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꽝하고 문이 닫혔다. 밖에 서서 현관문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는데 잠깐 빛이 반짝하더니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 시도했을 때는 아예 번호판 숫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얼음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 머리가 쭈뼛했다. 정신을 차리고 세 번째 비밀번호를 누를 때 손가락에 경련이 일었다. 현관문은 철판처럼 우뚝 서서 내게 아무런 신호음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제야 도어락 건전지가 방전된 것을 알았다. 비상전원을 켜는 방법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침 강추위가 엄습한 때여서 아파트 계단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찬 바람에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해야지? 그때 내가 쏟아낸 말은 그것뿐이었다. 잠자리에서 막 일어난 내복 차림인 데다 별다른 교류 없이 수인사만 하고 지내는 같은 층의 옆 주민을 이른 새벽부터 깨워 도움을 받을 처지도 못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층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종종걸음을 쳤다. 온몸이 덜덜 떨려 양손으로 가슴팍을 비벼대는 내 꼴이 수상하게 보였던지 차를 몰고 출근하는 운전자들의 수상쩍어하는 시선이 따가웠다. 주간 근무시간을 제외하고는 사무실이 비어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발길을 돌려 건물 입구 쪽 경비실로 뛰었다. 경비원은 내복 차림으로 창문을 두들기는 나를 보자마자 비상 마이크 버튼에 손을 올렸다. 괴한이 출현했다고 신고라도 할 태세였다.

여보세요, 나 이 아파트 주민이에요. 현관문이 잠겨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경비실 창문에 얼굴을 바짝 대고 큰소리를 지르자 경비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덜덜 떨고 있는 내 꼴이 처량해 보였던지 패딩 제복을 내게 씌어 주었다. 도어락 건전지가 다 닳아서 문이 꼼짝도 안 한다는 설명을 듣자마자 그는 무심하게 툭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