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뒤에도 귀는 들린다”…망자의 이야기를 듣는 남자

  • 카드 발행 일시2023.02.03

내가 지금까지 가 본 몇몇 종합병원 중환자실에는 벽시계가 걸려 있지 않았다. 수백 가지 중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들의 고통과 신음이 가득찬 곳에서 현재 시각을 알려준다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어서 굳이 안 걸었는지 모른다. 모든 의료기기에 시간이 들어가 있고 의료진도 그 시간 속에서 치료에 전념하고 있으니 환자만 시간에서 소외된 셈이다.

의식을 회복한 채 중환자실을 빠져나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에게 시간은 초조한 삶 그 자체다. 간호사에게 현재 시각을 물어보는 일이 잦아지는 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다. 그들은 휴대전화의 시간 서비스를 이용할 힘조차 없어 남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이게 보통의 중환자실 풍경이다.

하지만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경기도 포천의 한 호스피스 병동에는 입원실마다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용인의 호스피스 병동과 충북 음성 꽃동네도 마찬가지였다. 12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이 시계는 어느 날에는 환자들에게 삶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날에는 죽음의 사신으로 여겨진다.

예전에 내 아내와 호스피스 병동 2인실을 나눠 쓰던 한 말기 환자는 예민한 청각 때문에 큰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다. 자정이 가까울수록 벽시계 초침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심장을 두들기는 것처럼 느껴져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더니 며칠 후에는 벽시계의 문자판이 보이지 않게 돌려놓자고 내 아내에게 졸랐다. 또 며칠 지나서는 아예 시계 건전지를 뽑아버리자고 했다. 급기야 시계를 통째로 떼어버리자는 대담한 제의까지 해왔다.

이런 사정을 전달받은 수간호사의 배려로 밤에만 건전지를 빼서 벽시계의 시침과 초침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선에서 조정했다. 강제로 긴 잠에 들어간 시계가 째깍 소리를 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여성 환자는 “시계 소리가 시끄러워”라고 중얼거리며 귀마개까지 사용했으나 종내는 초침의 환청이 사라지지 않는 듯 연신 두 손으로 귀를 감쌌다. 이 행동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 건 한참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