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님, 암 그냥 놔둡시다” 이어령 웰다잉 택한 그날

  • 카드 발행 일시2023.02.17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불린 이어령씨가 지난해 2월 세상을 떠났을 때 “이제부터 죽음을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다짐하던 6년 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그 작업을 끝내고 삶을 마감한 인생의 승자였다.

생로병사라는 자연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다른 이와 같은 패자였을지 모르지만 웰다잉의 좋은 모델로 남았다는 점에서는 역시 승자였다. 그는 끝까지 존엄을 지켰다. 이어령의 사후 1주기를 맞아 17년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며 기록한 메모를 참고로 그의 인생 종반의 흔적을 두 차례로 나눠 적는다.

2017년 6월의 세 번째 월요일 저녁.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하 존칭 생략)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도착한 J 박사와 이야기 중이었는데 분위기가 어두웠다. 이어령은 한 달 전 서울 평창동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 앉은 내게 이런 부탁을 했다.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줄 만한 좋은 의사 없을까요. 내가 암 투병 중이요.

신문사 퇴직 후 이곳저곳에서 웰다잉 강의를 하러 다니던 중 나는 그가 앓고 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와 J 박사와의 만남을 다시 주선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어령은 딸 이민아 목사가 몹시 아팠을 때인 2011년 7월에도 저녁 식사에 나를 초대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어령은 암 치료를 둘러싼 궁금증을 풀어 줄 의사의 조언을 간절히 희망했다.

현역 기자 시절 여러 문화행사에서 어쩌다 한 번씩 그와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와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틈은 없었다. 자주 마주하게 된 것은 중앙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직한 지 1년여가 지난 2001년 초부터였다. 그가 중앙일보 고문으로 영입되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얼굴을 보게 되었다.

편집국과 논설위원실 등에서 여러 보직을 거쳐 퇴임한 뒤까지 만남은 17년간 이어졌다. 편집국장 시절에는 주요 간부들과 함께 매주 한 차례 그와 점심을 같이 하며 21세기 초에 벌어진 세상사의 이모저모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귀에 솔깃한 아이디어는 일선 기자들의 취재를 거쳐 신문 제작에 반영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이어령은 기자들의 현장 감각과 문제를 보는 시각을 존중했다. 그러나 과도하게 넘치는 메시지와 주변 사람의 개성을 압도하는 화제 독점 탓에 슬슬 합석을 피하는 간부들이 늘었다. 그때 나는 오히려 그와의 단독 점심이나 티 타임 횟수를 늘렸다.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가끔 그의 칼럼에 이런 내용을 녹이기도 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2015년 촬영한 사진이다. 중앙포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2015년 촬영한 사진이다. 중앙포토

몇 년 후 내 딸과 아내가 차례차례 말기 암 환자로 신음하고 있을 땐 대체의학에 관한 여러 정보를 알려주며 마음 깊은 위로로 나를 감싸 주었다. 세월이 흐르며 서로의 입장이 몇 차례 바뀌기도 했다. 그의 딸 역시 병마에 쓰러지고 5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엔 이어령 자신이 암과 싸워야 하는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