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역 일대 르포] 노인 부르는 '쪽방 윤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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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10시 서울 영등포역 뒤편 쪽방 골목. 희끗희끗 머리가 센 50~60대 여성 네댓명이 쌀쌀한 날씨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속칭 '펨프'로 불리는 호객꾼들인데, 경우에 따라선 직접 윤락에 나선다. 지나가는 노년층이나 노숙자가 주 고객이다.

한 60대 여성을 따라 들어간 단층 건물에는 쪽방 네개가 붙어 있다.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풍겨나온다. 벽지 곳곳에는 곰팡이가 슬었다. 그녀는 "부인이 없거나 살아있어도 하지 못하는 60~70대 할아버지들이 자식이 준 쌈짓돈을 모아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들 노인은 대부분 쑥스러워하며 골목 주변에서 서성거리다 '펨프'가 손을 잡아 끌면 못 이기는 척 조용히 따라간다.

부근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아직도 건강은 자신이 있다. 그러나 젊은 처자들이 있는 곳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쪽방 골목은 "환경이 안 좋아도 나이대가 비슷해 마음은 편하다"는 것이다. 6년 전 아내와 사별했다는 그는 "자식들에게 재혼하고 싶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6개월에 한번 정도 이곳에 온다"고 말했다.

쪽방 골목에 '실버 윤락가'가 형성된 것은 1990년대 초. 40여명으로 추산되는 윤락녀들은 50대 중.후반이 대부분이고 60대도 상당수다. 젊었을 때 청량리.미아리 등지에서 윤락생활을 하다 나이 때문에 이곳으로 떼밀려 온 경우가 많다.

음성적 매춘이다 보니 구청에서 정기적인 건강검진도 못 받고 있다. 이 지역에서 7년째 무료 의료봉사를 벌이고 있는 요셉의원 관계자는 "이곳을 찾은 노인 가운데 성병이 걱정돼 검사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다"며 "양성 판정을 받는 노인들도 상당수"라고 말했다. 경찰도 '막차'를 탄 윤락녀들의 딱한 처지 때문에 단속할 엄두도 못 낸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곳을 찾는 노인들이 달리 성 욕구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엔 영등포 쪽방 골목을 비롯, 종로 탑골공원.관악산 일대 등 노인 상대 윤락지대가 서너 곳 있다.

노인문제 전문가들은 "노인들에게도 성 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열린 분위기가 형성돼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인의 전화 강병만 사무국장은 "상담전화의 10%가량이 독신 노인들의 이성(異性)문제 고민"이라며 "자식들 눈치를 보지 말고 노인복지관 등을 이용해 이성교제를 하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반드시 성생활이 아니더라도 노인들끼리 이성 간 만남이 지속되면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는 설명이다.

김필규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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