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에 돌만 던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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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영화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영화문화소비자(관객)로서의 주권의식을 높이며 질 좋은 영화제작을 유도하기 위한 토론의 강인「시민영화마당」이 서울YMCA주최로15일 Y강당에서 열렸다.
10월부터 매달 한번씩 그 달에 상영중인 관심 있는 영화 한편씩을 선정, 공개토론에 붙이기로 한 이 영화마당에 오른 첫 작품은 최근 여성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기획 신씨네, 감독 김유진).
이 영화는 지난해 2월 추행범의 혀를 물어뜯은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6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받고 여성계의 논란 속에 항소,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변 모씨(36·여·경북 영양군 영양읍)의 사건을 기본줄거리로 하되 극적인 재미를 위해 다른 내용을 가미시킨 것. 영화 첫 장면에『이 땅의 여성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자막이 있어『이 영화가 과연 여성의 인권향상을 위해 얼마만큼 기여하고 있는가』가 토론의 주안점이 됐다.
정용탁 교수 사회의 이 토론에 참석한 주부 백미숙 씨(33·경기도 광명시) 는『이 영화가 여성인권차원에서 논란이 됐던 변 씨 사건을 기둥줄거리로 삼아 전개됐기 때문에 단지 재미·흥행이라는 상품성만으로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고 전제한 뒤『주인공이 정당방위를 위해 혀를 깨문 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남편의 소유물로서의 아내, 또는 어머니, 냉대 받는 며느리로서 겪는 아픔만 그렸지 그녀 자신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분노·인간성파괴의 측면은 간과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김유진 씨는『영화는 불특정다수가 보는 것인 만큼 재미를 위해 많은 허구를 가미했으며 단지 한 여자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려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며『「여성에게 바친다」는 자막은 그저 여성관객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영화평론가 김홍숙 씨는『기존의 70∼80년대 여성영화가 여성을 상품화하고 어설픈 유사여성해방이 곧 성의 해방인 양 왜곡되게 그 린데 반해 이 영화는 성폭행이라는 주제를 비교적 진지하게 조명해 간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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