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교예(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60년대초만 해도 서울 변두리나 시골 장터같은 곳에는 울긋불긋한 천막에 크고 작은 깃발을 나부끼며 손님을 기다리는 곡마단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특히 공연시간이 임박하여 트럼핏을 구성지게 불어대면 동네 꼬마들이 공부를 팽개치고 그 앞으로 몰려들곤 했었다.
곡마단을 영어로는 서커스(circus)라고 하는데,어원은 「원형경기장」이다. 영화 『벤허』에서 보듯이 고대 로마에서는 이 원형경기장에서 마차(전차)경주나 체조경기가 벌어져 우승을 다투었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각국의 서커스극장은 원형무대로 되었다.
오늘날의 서커스는 고도의 기술훈련을 받은 사람과 동물로 구성되었지만 18세기 전만 해도 이것은 별개의 공연으로 나뉘어 있었다.
사람이 재주를 부리는 것을 곡예라 하고 곡예사를 영어로는 애크러뱃(acrobat)이라고 한다. 이 역시 그리스어 「높이」(acros)와 「가다」(baino)에서 나온 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줄타는 사람」을 곡예사라 했고 줄타기를 가르치는 학교까지 있었다. 그래서 호머의 시에도 곡예사가 등장할 만큼 곡예를 즐겼다.
이 곡예를 북한에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교예」(공예)라고 부른다. 북한의 『백과전서』 풀이를 보면 교예는 「사람의 육체적 기교동작을 통하여 용감성과 대담성,강의한 의지와 참을 힘,슬기로운 기상 등을 반영함으로써 사람들을 체육문화적으로 교양하는 데 적극 이바지하는 것」으로 돼 있다.
따라서 그들은 「곡마단에 팔려가 곡마단 우리에 갇힌 채 채찍과 욕설 속에서 시들어가는 지난 시기의 곡마단」(조선예술)과 구별하기 위해 곡예를 교예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 북한의 교예가 이번 평양에서 열린 「통일축구」의 열기 속에서 잠시 남쪽 인사들에게 선을 보여 화제가 되었다.
세계대회에서 여러차례 1위 입상을 했다는 평양교예단이 보여준 이날 공연은 수중발레,빙상 비둘기 조형,널뛰기,전회비행(공중 트라피드) 등이었는데 모두 상당한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3회전을 치른 「곰권투」로 다운을 당한 뒤 카운트를 세면 일어나고 또 심판에게 항의하는 장면까지 연출,관객을 웃긴 모양이다. 곰을 그처럼 「훈련」시킬 수 있는 그들의 집념이 새삼 놀랍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