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우기의 수모(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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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종대왕을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 꼽는 것은 그의 재위기간중에 이룩된 수많은 문화적 성취 때문이다.
그는 집현전이라는 싱크탱크를 통해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연구를 추진했는데 그중에서도 과학기술분야에 끼친 업적은 눈부신 바가 있다.
이들 연구결과는 대부분 책으로 엮어져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우선 농업기술에 관한 『농사직설』,의약분야에서는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군사기술에서는 『총통등록』,그리고 지리조사와 지도제작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학기술분야에서도 특히 그가 열정을 쏟은 것은 천문기상에 관한 것이었다.
세종이 천문과 기상학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선조의 건국이념인 유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홍수와 가뭄 등 모든 재이는 정치가 잘못되어 일어난다는 유교의 자연관은 결국 정치의 책임은 임금에게 있고,모든 재이 또한 그 책임의 소재가 임금에게 돌아간다는 생각에서 그것을 인간의 능력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당시 중국의 수준높은 천문학도 하나의 자극제가 되었다. 그는 중국을 능가하고 싶은 개인적인 야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 결과 새로운 역법과 천문에 관한 저술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세종의 뛰어난 업적은 천문ㆍ기상현상을 관측할 수 있는 많은 기구들을 제작한 데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앙부,현주,천평,정남일구 등 해시계와 자격루,옥루 등 물시계,그리고 측우기와 수표 등 강우량을 측정하는 기구들이다.
그중에서 측우기는 과학적으로 강우량을 측정하는 세계 최초의 발명품임을 우리 교과서에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영국을 다녀온 과학사가 박성래교수(외대)에 따르면 세계 유수의 케임브리지대 과학박물관에 그동안 「세계 최초」의 발명품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측우기와 금속활자가 온데 간데 없고 그 자리에 다른 나라의 뒤늦은 유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8월은 문화부가 정한 물시계연구의 과학자 「장영실의 달」이다. 그래서 각종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행사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역사적 유물을 세계에 널리 알려 이런 수모를 다시는 겪지 않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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