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향기] 물위에 글씨를 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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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호수 주변에 설치된 장치가 움직이면서 잔잔한 수면에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호수 가장자리에서 만들어진 물결이 서서히 합쳐지면서 수면에 '대한민국'이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보인다."

일본 오사카대 시게루 나이토 교수와 미쓰이 조선의 아키시마 연구소 연구원들은 최근 '아메바(AMOEBA : Advanced Multiple Organized Experimental Basin)'라는 장치로 수면에 글씨를 써 보였다. 아직은 조그만 풀에서 간단한 문자를 만들어낸 정도지만 곧 분수나 놀이공원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아메바는 직경 1.5m, 깊이 0.3m의 원형 물탱크에 50개의 파동 발생 장치가 달렸다. 알파벳이나 간단한 한자를 15 ~ 20초 정도 잠시 나타내 보일 수 있다.

물위에 글씨를 쓰는 이 놀라운 기계의 원리는 무엇일까. 여러 개의 파동을 중첩시켜 합성파가 글자 모양이 되도록 조절한 것이다. 파동은 입자와 달리 한 위치에 여러 개의 파동이 만나면 서로 보강되거나 상쇄된다. 아메바는 파동 발생기에서 만들어진 파동의 보강간섭과 상쇄간섭을 이용하여 글씨를 쓴다. 물론 정확한 글자 모양으로 파동을 만들려면 복잡한 수식이 동원되어야 한다. 파동을 적당히 합성시키면 문자뿐 아니라 훨씬 복잡한 모양도 만들 수 있다. 푸리에 급수로 알려진 이 방법은 '아무리 복잡한 파동도 간단한 파동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푸리에 급수를 일상 생활에 이용하면 소음으로 소음을 없앨 수도 있다. 여객기 밖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엄청나게 시끄럽지만, 여객기 안은 소음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기술이 그 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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