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제재 '한국 끌어들이기'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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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 정부에서 대북 강경파로 손꼽히는 존 볼턴(사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다음달 초 서울을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24일 알려졌다. 그의 방한을 놓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등에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용'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측에선 북한 핵실험 이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14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19일)이 서울을 다녀갔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볼턴 대사는 '강연하러 일본을 방문하는 참에 한국에 들르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한국 측과 일정을 조율했다.

이 관계자는 "볼턴 대사가 대북 제재 결의 이행에 중심 역할을 하는 인물인 만큼 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만나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 참여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각국이 다음달 15일까지 유엔 결의안에 따른 구체적인 제재조치 내용을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에 보고해야 돼 볼턴 대사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볼턴 대사는 그동안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초강경 대응을 주장해 왔다.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 시절(2001년 8월~2005년 3월)에는 북한 정권을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 대북 봉쇄론을 주장했다. 대북 직접협상을 거부한 채 정권 교체와 선제 공격 등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 10월 15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와 관련해 한국.중국에 철저한 이행 조치를 촉구해 왔다. 결의안 채택 당시에는 안보리 결의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퇴장한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대사를 가리켜 "1960년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이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연단을 두드렸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유엔은 북한을 축출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성토한 바 있다. 볼턴 대사는 송민순 청와대 안보실장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 당국자들과 만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측에선 매파로 분류되는 볼턴 대사와의 면담 대상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양측의 면담을 통해 유엔 내 기류를 확인하고 한.미 간의 대응 수준을 조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볼턴 대사의 방한에 따른 파장을 애써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볼턴 대사가 온다고 해서 우리가 대북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종석 장관과의)면담 일정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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