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품위(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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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람의 입과 위는 실패작이다. 필요없는 것을 괜히 만들었다. 조물주가 좀더 선견지명과 생각이 깊었으면 인체를 그렇게 설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이입옹이라는 쾌락주의자가 한 말이다.
식도락가가 들으면 실망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겠지만,잠시 그의 궤변을 더좀 들어보자. 아득한 옛날,인류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오늘까지 문제의 입과 위때문에 얼마나 고생스럽고,복잡하고,괴로운 나날을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교활한 것도 모두 그놈의 입과 위때문이다. 귀뚜라미나 개미처럼 사람도 이슬만 먹고 살 수 있다면 구태여 형법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느냐고 이입옹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한다.
하긴 공자같은 점잖은 분도 입과 위 때문에 이혼까지 했다. 그의 부인은 평소 밥상을 차리면서 고기에 적당한 양념도 하지 않은 채,그나마 네모 반듯하게 썰지도 않은 것을 되는 대로 밥상에 올려놓았다. 공자는 그때마다 비위가 상했다.
하루는 찬거리가 마땅치 않아 공자의 아내는 아들을 시켜 동네 식료품 가게에서 술과 냉육을 사오도록 했다. 공자는 어느새 그 맛을 알아보고 밥상을 물렸다. 『나는 집에서 빚은 술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 가게에서 사온 고기도 먹지 않는다.』 이쯤되면 아내는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다. 공자가 이슬만 먹고 살았다면 이런 부덕한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우리는 신문과 TV를 통해 도살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을 보았다.
소를 잡으면서 근수를 불리기 위해 잔혹하게 물을 먹이는 장면이다. 그런 지 며칠되지도 않아 이번엔 그보다 더한 개를 잡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개 몸에 불을 지르는 것이나,물을 먹이는 얘기는 차마 옮겨 놓기도 역겹다.
여기서 「생명애」라는 고귀한 말은 괜히 얼굴 간지러운 위선같아 보인다. 짐승을 죽이는 것만 해도 그런데 꼭 그런 방법으로 죽여야만 하는가 하는 말이다. 게다가 아무리 사람의 입과 위가 탐욕스럽고,몰염치하다고는 해도 저렇게 잡은 개까지 먹어야 하는지,비감을 느끼게 했다.
옛 선현은 사람은 의식이 족하면 영욕을 안다고 했다. 영욕이란 곧 예의와 욕됨을 말한다. 우리도 이제 이만하면 위의 품위도 좀 생각하며 살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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