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 그러나 기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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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정현종(67)씨가 북한의 핵실험을 맹렬히 비판하는 1연 67행의 장시 '무엇을 바라는가-북한 핵실험에 부쳐'를 발표하고 이틀이 지났다. <본지 10월 19일자 2면>

문단은 지금 한창 시끄럽다. 40년 넘게 서정시만 고집해온 시인이 직설적 언어로 북한 체제를 비판한 것도 놀라웠고, "글쟁이는 나라에 위기가 오면 말할 책임이 있다"며 "침묵하지 말라"고 갈파한 것도 의외였기 때문이다. 마침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달 말 금강산에서 남북문학인모임 결성식을 열어야 할지 고민 중에 있었다. 술렁거리는 문단의 분위기를 전한다.

◆ 처음엔 놀랐고 다음엔 환영=정현종 시인과 40년간 친분을 쌓은 문학평론가 김치수(66.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처음엔 충격이었다"고 털어놨다. "정 시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놀라웠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남북한 문학 교류라는 명목 아래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일부 문인들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던 참이었다"며 "정 시인의 시를 보고 기쁘고 반가웠다"고 덧붙였다.

문단 반응은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 처음엔 놀라웠고, 다음엔 환영한다는 것이다. 한국시인협회 오세영(서울대 국문과 교수) 회장도 "지난 시대 이 땅의 문인들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야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며 "정 시인이 갈파했듯이 문인들이 일부 좌파의 논리에 빠져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문인들도 "정현종 선생님을 열심히 응원해야겠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독자 반응도 뜨거웠다. KBS 선임 PD이자 시인인 장충길(55)씨는 '붉은 강-정현종 시인의 시에 답함'이란 장시를 본지에 보냈고, 최진호 부경대 교수도 '문인들의 개혁 운동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글을 부쳤다. 시집이 언제 출간되느냐를 묻는 문의전화도 여러 통 있었다.

◆ "북한은 지혜롭지 못했다"=프랑스에 체류 중인 소설가 황석영씨는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은 더 이상의 물리적 행동을 자제하고 미국은 직접 대화에 나서라"라고 주장했다. 소위 양비론적 입장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 등 진보 성향의 문인단체들도 대부분 이와 같은 생각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 김형수 사무총장은 "어떻게 대처해야 우리 민족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작가들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 개인의 판단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현종 선생의 작품에 대해 직접 할 말은 없다"고 답했다. 대신 "그러나 우리는 북한과 미국 양자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지켜왔다"며 "한반도에서의 핵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고은 시인은 "참으로 어려운 때"라며 입을 열었다. "양비론은 북한 핵실험 이전엔 유력한 논리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라며 "북은 지혜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시인의 작품에 대해선 "개인의 자유 의견이니 왈가왈부할 게 못 된다"고 선을 그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이번 주말 남북문학인모임 결성식 개최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행사 개최가 결정되면 작가회의는 북한 핵실험에 대한 의견을 발표할 예정이다. 북한의 자제와 미국의 대화를 함께 촉구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김형수 사무총장은 전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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