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물가·경상수지 '魔의 3각함수'

중앙일보

입력

우리나라 경제가 '3중모순'(Trilemma)에 직면했다. 성장률, 물가, 경상수지 어느 것 만만치 않은 상황.

물가가 꿈틀대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마당에 경기부양책을 펴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북한 핵실험'까지 불청객으로 등장했고, 유가도 안심할 수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그린 내년 경제의 모습이다.

KDI가 내다본 내년 경제성장률은 4.3%. 올해 성장률 전망치 5.0%에 크게 못 미친다. 이마저도 최근 불거진 북한 핵실험 사태는 반영조차 안 됐다. 경기둔화를 기정사실화한 셈이다. 소비 둔화와 세계경제 성장 둔화가 전제로 깔렸다. 소비증가율은 올해 4.1%에서 내년 3.8%로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정부도 만족하기 어려운 성장률이다. 정부가 내놓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4.6%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맘놓고 경기부양책을 펴기도 힘든 상황이라는데 있다. 물가와 경상수지가 걸림돌이다.

KDI가 예상한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 올해 전망치 2.5%보다 0.3%포인트 높다. 올초부터 불안 조짐을 보여온 서비스물가의 상승세가 심상찮다는 판단에서다. 가뜩이나 실질소득 증가세가 주춤한 터에 물가 부담은 간단치 않은 변수다. 섯부른 경기부양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반대로 물가를 잡겠다고 금리 추가인상을 용인하기도 쉽지 않다. 경기부양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센 가운데 북핵 국면에 대한 판단도 요구되는 탓이다.

조동철 KDI 선임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당분간은 콜금리가 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경상수지는 아예 적자를 예상했다. 올해는 간신히 흑자를 지키겠지만 내년에는 14억달러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게 KDI의 관측이다. 수출 증가율이 14.7%에서 11.8%로 낮아진다는 가정이 깔렸다. 서비스.소득.경상이전수지 적자도 225억달러에서 257억달러로 불어난다는 분석이다.

KDI는 애써 '균형 수준'임을 강조했지만, 1997년(83억달러 적자) 이후 10년만의 적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잖다. 넉넉한 외환보유액을 안심하기에는 '북핵 위기'가 부담스럽다. 경상수지 적자가 원화 약세로 이어져도 반갑지만은 않은 상황.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이론상으로는 경상수지 균형이 바람직하다지만, 현실적으로는 소폭 흑자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성장이 아쉽다고 내수부양에 나섰다간 경상수지 적자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게 정부의 고민이다. 경상수지가 '소득과 내수의 격차'라는 점에서 그렇다.

조 박사는 "경상수지가 균형 수준까지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재정 등을 통해 내수부양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경기부양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상황을 지켜본 뒤 12월쯤 정책기조를 다시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당국의 고민은 깊어진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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