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아줌마」들의 외로운 투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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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피코아줌마」들의 외로운 단식투쟁이 열흘째 접어들었다. 미국 시러큐스리버풀에 있는 피코본사앞 황량한 도로가에서 오늘도 3명의 피코아줌마들은 땡볕더위아래서 민족적 자존심을 건 체불임금 찾기의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보도다.
안테나 생산업체로 85년에 설립된 피코 한국지사가 사전 아무런 통고도 없이 공장문을 닫고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나버린 지난해 2월이래 밀린 임금과 퇴직금 2억7천만원을 찾기 위한 투쟁이 5백30일째가 되었고 유점순씨를 비롯한 3명의 노조대표가 도미,투쟁을 벌인지 3개월째가 된다.
피코아줌마들이 이처럼 줄기차게 찾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빼앗긴 돈만이 아니라 빼앗긴 자존심을 찾으려는 것이다.
『지옥의 유황불이 꺼지기 전에는 노동자들과 만나 협상하지 않겠다』 『범죄자들과 얘기하기엔 시간이 아깝다』며 문을 닫아건 채 면담마저 거절하고 있는 히치코크사장의 오만한 태도에 피코아줌마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유사한 경로를 거쳐 밀린 임금과 짓밟힌 자존심을 되찾는 데 성공한 일본 스미다사 한국공장 노조의 뜨거운 승리를 확인한 바 있다.
그들의 외로운 투쟁을 위해서 동료근로자들이 보인 눈물겨운 성원과 현지 단체들의 따뜻한 손길이 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있음도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피코노조 국내후원회」가 발족되고 모금운동이 여러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의아스럽고 실망스런 일은 두번째나 거듭되고 있는 여성근로자들의 이처럼 외로운 해외 원정투쟁에 대해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정부간의 채널을 통해 협의하고 조정하기엔 너무나 미세하고 시시한 일이기 때문인가. 개인기업에서 일어난 일이니 알아서 처리하라는 뜻인가.
피코아줌마들의 도미투쟁이 3개월을 넘어섰지만 현지의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의 직원은 한사람도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하니 그 까닭을 알려야 알 수가 없다.
지난 한해 외자기업 철수로 근로자가 피해를 본 건수가 14개 회사에 이르고 있다면 그에 대한 정부대로의 의법조처가 있어야하고 앞으로도 예상될 수 있는 사태에 대한 법개정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수수방관일 뿐이다.
비록 3명의 외로운 투쟁이라고는 하지만 그들 뒤에는 국민적 성원과 격려가 담겨있고 미국회사의 불법적 조처에 대한 의롭고 합법적인 투쟁이라고 한다면 정부는 정부대로의 성의와 노력을 보여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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