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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보' 용어 신중하게 사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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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보수는 보통 '케케묵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기득권에만 집착하고 가치관을 잘 바꾸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 개화파.수구파를 말할 때 수구파 이미지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따라서 보수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반대로 진보라는 말은 '무지와 야만의 단계를 벗어나 지식의 세계,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좁은 이해관계나 낡은 가치관을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붙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신문에서 '진보적' '보수적'이란 표현을 볼 때마다 적합한 대상이 아닌 전혀 다른 대상에 대해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우리 사회에서 그런 합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반미.반시장경제론자들을 진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리고 보수는 이른바 진보 쪽 사람들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된 느낌이다.

이쯤 되면 용어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개의 경우 보수나 진보라는 표현은 누가 진정 보수인지 진보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한쪽에는 상대적 불이익을 주고 다른 한쪽에는 불공평한 이익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신문부터 잘못된 용어 사용을 자제하기를 바란다. 사회의식이나 현상을 기술하려면 대표적인 지칭어가 필요하다는 사정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맞지 않는 용어를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

신문은 개별 사안(예컨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국민연금 삭감 문제 등)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이 어떠한지를 찾아 그것을 제대로 기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구를 진보라 하고 누구를 수구 보수라 부르는 것은 불공정한 정치적 헤게모니 쟁탈전의 냄새가 나 매우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허진호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