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바둑계, "이창호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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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5년간 세계바둑을 평정해 온 1인자 이창호 9단이 유일한 세계 타이틀 춘란배를 중국에 넘겨주면서 마침내 국제기전 무관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쿠키뉴스가 12일 보도했다.

'디펜딩 챔피언'인 이창호는 지난달 28일 열린 대회 8강전에서 구리 9단에게 패해 마지막 남은 이 타이틀마저 상실하면서 그의 아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창호는 중국 바둑계의 독보적 존재인 마샤오춘과 창하오를 번번이 결승전에서 침몰시키며 '결승 불패'의 신화를 쌓아왔다. 그의 스승 조훈현 9단은 일찍이 이창호를 보고 '반상에도 없는 반집을 찾아내는 아이'라며 혀를 내둘렀고, 이후 바둑계는 그를 '신산(神算)'으로 부르며 '반집 승부=이창호 승리'란 방정식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요즘 결승전에서 중국기사에게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전자랜드배와 국수, 왕위, 10단, KBS바둑왕 등 5관왕을 달리며 국내 1인자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지만 국제대회 성적은 예전 같지 않다.

이창호는 올들어 국제대회 타이틀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올초 삼성화재배결승에서 중국의 러시허에게 분루를 삼킨 것을 필두로 LG배 세계기왕전 16강전에선 중국의 신예 천야오예에게 져 탈락했고, TV아시아바둑 결승전에선 중국의 왕시 9단에게 패했다. 또 농심배 단체전 결승과 CSK배 단체전에선 모두 일본의 숙적 요다 노리모토 9단에게 졌다.

이창호의 부진에 따라 한국의 성적 또한 저조하다.

박정상 9단이 후지쓰배를 안았을 뿐 지난해 하반기 응씨배를 창하오에게 내준 것을 비롯해 올들어 열린 삼성화재배, LG배, 춘란배, CSK배 단체전 우승을 모두 중국에 헌납했고, 농심배 우승은 일본에 내줬다.

이세돌 9단이 도요타덴소배 결승전에 진출, 장쉬와 우승을 다투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이에 대해 한국바둑계는 "이창호의 부진은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세계 바둑계의 흐름이 젊어지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젠 이창호가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독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한국바둑은 이창호를 앞세워 10여년간 독주해 왔지만 이창호를 넘어서는 신예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세대교체가 잘 이뤄진 중국에 앞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디지털뉴스 [dig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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