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브루킹스 연구소'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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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일본 재계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국가 정책에 적극 반영시키기 위해 일본 내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이 참여하는 합동 싱크탱크를 연내 출범시키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8일 보도했다. 특히 싱크탱크의 실질적인 영향력과 실천력을 제고하기 위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를 고문으로 초빙하는 등 각계 유력 인사들을 대거 스카우트할 방침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싱크탱크가 다루게 될 영역은 무역.통화.에너지.환경.안보 등 주요 과제를 망라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재계 지도자들이 새 싱크탱크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번 프로젝트는 '일본 재계의 총리'로 불리는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전 도요타 회장과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 캐논 회장 등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의 전.현직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재계의 실력자들이 이처럼 새 싱크탱크에 큰 관심을 쏟는 이유는 무엇보다 일본 경제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위기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는 공감대가 싱크탱크 출범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오쿠다 전 회장도 "최근 일본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나아진 게 없으며, 근본 체질이 바뀌지 않으면 조만간 몰락하게 될 것"이라며 '일본 침몰론'을 주장해 일본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동안 정치권과의 관계에서 줄곧 수세적 입장에만 머물러온 탓에 재계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지 못했다는 자체 반성도 싱크탱크 발족에 한몫했다. 미타라이 회장이 지난달 22일 새 내각 출범 준비에 정신이 없던 아베 신조 총리를 예정 없이 찾아가 재계의 5대 요구사항을 전달한 것도 일본 재계가 앞으로는 결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 싱크탱크는 정부.정치권과의 정책 대결을 주도하게 될 전망이다.

일본 재계는 이를 위해 미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를 벤치마킹하기로 하고 최근 몇 달 동안 철저한 사전 준비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싱크탱크의 명칭은 '국제공공정책연구소'로 잠정 결정됐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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