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벌거숭이 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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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벌거숭이 바다' - 구자운(1926~72)

비가 생선 비늘처럼 얼룩진다
벌거숭이 바다.

괴로운 이의 어둠 극약의 구름
물결을 밀어 보내는 침묵의 배
슬픔을 생각키 위해 닫힌 눈 하늘 속에
여럿으로부터 떨어져 섬은 멈춰 선다.

바다, 불운으로 쉴 새 없이 설레는 힘센 바다
거역하면서 싸우는 이와 더불어 팔을 낀다.

여럿으로부터 떨어져 섬은 멈춰 선다.
말없는 입을 숱한 눈들이 에워싼다.
술에 흐리멍텅한 안개와 같은 물방울 사이

죽은 이의 기(旗) 언저리 산 사람의 뉘우침 한복판에서
뒤안 깊이 메아리치는 노래 아름다운 렌즈
헌 옷을 벗어버린 벌거숭이 바다.



끌려서 한 번 더 읽고, '극약의 구름' 때문에 또 읽는다. 조금 서글퍼져 한 번 더 읽고 가까운 사람인가 싶어 가까이 대고 읽는다. 산 사람을 뉘우치게 한 죽음이 안쓰러워 '헌 옷을 벗어버린 바다'를 생각하면서 또 읽었다. 뉘우칠 일 생각하며 바다 보며 다시 읽으리.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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