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뿌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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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뿌리의 힘'- 함민복(1962~ )

서울서 면도하고 고향 와

턱 만지니 꺼끌꺼끌

강철 면도날 수백 개

밀어 온 수염

뿌리의 힘

날려고 그림자 떼어버렸던 구름

낙향하는 눈보라

앉아서 죽은 아버지와 같이 쓰러지던

흰 수염의 검은 그림자


함부로 고향에 갈 일 아니다. 공감하리라. 그러나 버티다 버티다 할 수 없이 스르르 가버려질 때 있다. 뿌리의 힘이다. 떠날 때 구름이었으나 먹구름이 되고 더하여 눈보라가 되어 되돌아가는 고향 길, 수염 까칠해질 수밖에. 아버지 맥없이 잃어 묻은 고향, 면도하고 가봐야것다. 옛 주소여. 이 눈보라 안아다오.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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