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첫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내정을 환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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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실상 유엔 사무총장에 내정됐다. 거부권을 갖고 있는 5개 상임이사국의 의중이 드러나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4차 예비투표에서 이들 국가의 반대 없이 찬성 14표, 기권 1표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반 장관은 극적인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안보리의 공식 추천과 총회 추인을 거쳐 '세계 최고의 외교관'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다. 본인에게도 영광일뿐더러 국가적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유엔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1948년 유엔 권고에 따른 총선거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의 국가를 세웠다. 한국전 때는 안보리의 파병 결정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 후 유엔의 도움과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 나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북한이 넘볼 수 없는 억지력 확보로 분쟁 재발을 막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진입했다. 민주주의 구현에서도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어냈다. 한마디로 '평화' '경제발전' '인권'이라는 유엔의 3대 목표를 제대로 이행한 '국제사회의 모범국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것이 이번 결과를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반 장관은 이 점에 유념,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보다 존경받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 주길 바란다.

이번 결과는 우리 외교를 질(質)과 양(量)에서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 외교는 4강을 위시한 특정 국가에 묶여 왔다. 남북 대치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쟁의 해결이 주임무인 유엔 사무총장을 한국이 배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 외교의 지평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중국과 함께 동북아에서 '무시 못할 국가'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된 것은 큰 외교적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를 통해 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도록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사무총장은 출신 국가의 국익에는 초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한국과 유엔의 입장이 상치될 경우 혼선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사무총장이 국제적 여론의 지지를 받으면서 중재역을 잘 수행한다면 어떤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반 장관의 책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내정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고양될 게 틀림없다. 국민적 자부심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우리 역사상 이번만큼 국제무대에서 비중 있는 직위에 오른 인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장관과 한국엔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도 수반된다. 밀린 유엔 분납금이나, 국제사회의 기준에 턱없이 부족한 공공개발원조(ODA) 문제 등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이다.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내정을 환영하면서 이런 과제들을 잘 해결해 성공한 사무총장으로 기록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