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전 부시 - 반다르 주고받은 북한 대화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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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휴전선에서 총 한 방만 쏴도 주한미군은 절반을 잃게 된다."

2001년 취임 전까지 한반도 상황에 깜깜했던 조지 W 부시(얼굴) 미 대통령에게 반다르 빈(사진) 술탄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가 이렇게 황당한 한반도 정세를 강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의 유명 언론인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 포스트 부국장은 최근 펴낸 '부인(否認)의 국가(State of Denial)'에서 2000년 6월 부시가 반다르 당시 사우디 대사와 북한 문제를 놓고 주고받은 대화를 생생하게 전했다.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부시는 어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의 75세 생일파티장에서 반다르 대사를 만났다.

부시는 "(외교 참모들이) 세계 정세를 브리핑할 때마다 북한 문제가 꼭 등장한다. 그런데 내가 왜 북한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네가 국제 문제를 잘 아는 놈(asshole)이니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반다르는 "휴전선 근처에는 주한미군 3만8000명이 배치돼 있다. 그런데 북한과 충돌이 발생하면 주한 미군은 절반쯤 희생될 수 있다. (북한이) 생화학전이나 재래식 공격을 감행할 경우 1만5000명은 숨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는 "음, 내게 브리핑하는 놈들(assholes)이 핵심을 말해주길 바랐는데 (안 그랬다)"라며 "나는 그동안 북한에 대해 반쪽 얘기만 들었던 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반다르는 "이젠 북한 문제는 신경 안 쓸 거죠"라고 물은 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면) 주한미군을 전부 철수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휴전선에서 충돌이 발생해도) 소규모 지역분쟁으로 끝난다. 그러면 당신은 한반도에 개입할지 말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찾을지 결정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때 콜린 파월이 다가오자 부시는 "어이 콜린, 나와 반다르는 황소(북한)를 사냥하고 있었다"며 화제를 돌렸다고 한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 반다르 빈 술탄(56) 왕자=사우디 왕족으로 1983년부터 2005년까지 22년간 주미 대사를 지내며 사우디 왕가와 미국 대통령들을 밀착시킨 워싱턴 외교계의 거물이다. 특히 부시 가문과 밀착해 '반다르 부시'란 별명이 있을 정도다. 부시는 2003년 이라크 침공 직전 반다르에게 공격 계획을 미리 알려줬다는 소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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