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찾기 어려운 '지하철 노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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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지하철은 규모와 수송 인원에서 세계 4위입니다. 이용객들은 가려는 역의 위치를 찾고 어디서 환승해야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선도를 꼼꼼히 살핍니다. 그런데 서울지하철의 노선도는 종류도 가지각색이고 형태도 너무 다양해 승객들이 적잖이 애를 먹습니다.

서울.부산.인천의 경우 실제 도시 구조는 남북으로 길게 형성돼 있지만 지하철 노선도는 가로로 길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승강구 상단에 부착하기 위해서이지만 실제 지리적 조건과 노선도의 차이가 커 승객들은 어색함을 느낍니다. 환승역 표시에 사용한 동그란 태극문양(삼태극)도 노선을 표시하는 여러 색과 서로 혼동돼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을 줍니다.

선진국에선 지하철 노선도의 선을 가로와 세로, 45도 사선 등 세 가지로 원칙을 정해 정리합니다. 우리의 노선도(上)는 사선의 각도와 꺾이는 부분의 처리가 제각각이고 역명(驛名)의 정렬 방향과 글자 크기도 달라 정보를 찾는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독일 함부르크의 지하철 노선도(下)는 역 표시가 선을 사각형으로 파내어 들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승객들의 시선은 선을 따라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또 두 개의 역이 환승되는지, 세 개의 역이 환승되는지가 확연히 드러나도록 일반역보다 10배에서 30배나 더 큰 크기의 사각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적지와 환승역 찾기라는 목적에 충실한 결과 한결 미끈하고 시원한 디자인이 됐습니다.

요즘 서울지하철의 승강구 상단 노선도에는 상하좌우에 광고물이 잔뜩 붙어 있어 '시각적 간섭'이 심합니다. 이는 광고가 공공정보를 압도하는 것이어서 노선도에 집중해야 하는 시민들의 어려움은 생각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지하철 노선도는 쉽게 빨리 읽히는 구조를 가져야 합니다. 집중력을 위해 주위에 어떤 장애물도 없어야 합니다. 도시의 모든 시각 정보가 시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더 많은 인간공학적 연구와 미적인 조정이 필요합니다.

권영걸 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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