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로 10주기|재조명작업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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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장 폴 사르트로 10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프랑스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잇다.
20세기 정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1980년4월15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과연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철인이었는가, 아니면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단순한 천재였을 뿐인가. 최근 프랑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에 대한 재조명은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추고있다.
르 몽드등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들은 사르트로 특집기사를 싣고 그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공영 텔리비전인 앙텐2는 15일밤 그에 대한 두시간짜리 추모특집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최근의 재평가작업은 수만명의 애도인파 속에 그가 몽파르나스묘지에 묻힌지 10년이 지난 오늘의 세계가 더이상 그의 몸으로 부대끼던 과거의 세계와 같지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철의 장막」도, 그가 꿈꾸던 「인민공화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반체제인사였던 바츨라브 하벨은 이제 체코및 슬로바키아연방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어있다.』(리베라시옹)
생의 후반부를 좌파지식으로 정통사회주의를 꿈꾸며 살다간 그의 세계인식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수단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대부분의 평가가 일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좌파주의에 입각한 그의 정치적 저작들은 더이상 그것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수는 없는 「깨진 거울」이라는게 리베라시옹의 진단이다. 좌파주의자로서의 사르트르의 저작들은 한시대의 화학적 침전물인 뿐이라는 지적이다.
『우리가 사르트르와 함께 땅에 묻은 것은 바로 우리들의 젊음』이라는 르몽드의 인식에서도 그의 죽음을 전후한 시대적 단절과 격변을 엿보게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르피가로지는 사르트르를 자기 천재성의 희생자로 규정하고, 만일 그가 자신의 환상을 정치적 언어로 변형시켜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않았던들 그는 실존주의와 누보로망(신소설), 신비평, 예술적 현상학등을 창시한 위대한 철학자로, 또 문필가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말년에도 마오이스트계열의 기관지인 「인민의 기수」를 손에 들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사르트르.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참여파 지식인으로 「앙가주망」(참여)이라는 시대의 지적 유행을 창조하기도 했던 그이지만 결국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것이 그의 사후 10년을 맞은 오늘의 일반적 평인것 같다.
그가 직접 창간에 간여하기도 했던 프랑스의 좌익계일간지인 리베라시옹이 그의 10주기를 맞아 게재한 특집기사의 다음과 같은 결론은 사뭇 아이로니컬하다.
『자기시대를 반영하지못하는 철학자는 진정한 철학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자기시대만을 대변한다면 그는 한명의 지식인에 불과할 뿐이다.』 【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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