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소장 '6년 임기' 집착 법규정도 못 챙긴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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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에 이어 7일에도 국회의 헌법재판소장 인사청문회는 법리 논쟁으로 이틀째 얼룩졌다. 청와대가 전효숙 후보자에게 재판관 사퇴를 요구한 게 발단이다. 그런가 하면 국회의원 23명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제동을 걸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추진과정의 위헌 여부를 물었다. 대통령이 적극 추진하는 국가적 어젠다에 반기를 든 주도세력은 13명의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졸속과 혼돈, 요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모습이다.

청와대는 7일 대통령 직인을 찍어 기존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에 헌재 재판관을 추가한다는 동의안 보정서를 국회에 보냈다. 사실상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하는 과정에 편법이 있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편법 논란으로 파행을 거듭한 끝에 전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이날 가까스로 속개됐지만 청와대의 아마추어식 일처리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의 헌재소장 물색작업은 지난달 초 수면 위로 올라왔다.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이자, 3년 전 헌법재판관에 발탁된 전효숙 재판관을 유력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탄핵 등 주요 헌재 사건에서 정부 측 입장을 지지했던 전 후보자는 첫 여성 재판소장이라는 의미도 있어 적임자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전 후보자 지명 가능성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전 후보자의 소장 임기 논란이 일었다. 헌재소장의 임기는 6년이지만 현직 재판관이 소장에 지명된 경우가 처음이라 전례가 없었다. 전 재판관의 임기는 이미 3년이 지났다. 재판관 자리를 사퇴하지 않을 경우 소장 임기가 재판관의 잔여임기 3년으로 줄어들게 될 것을 우려한 청와대는 치밀한 법률 검토작업 없이 손쉬운 재판관 사퇴의 길을 택했다. 지난달 16일 헌재소장 지명 발표와 동시에 청와대 민정수석은 전 후보자에게 재판관 사퇴를 요구했고, 전 후보자는 이에 응했다. 한나라당은 "코드가 맞는 인사에게 헌재를 6년 동안 맡기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대한변협도 이례적으로 전 후보자에 대한 반대성명을 냈지만 청와대는 무시했다.

그러다 6일 문제가 드러났다. 국회 헌재소장 인사특위에서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재판관 중에서 소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들이대며 위법성을 제기했다. 위법 논란이 불거지면서 청와대의 미숙한 일처리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7일엔 재판관 청문회는 특위가 아닌 법사위에서 하는 게 맞다는 또 다른 논란이 추가됐다. 헌법 해석에 이어 지난해 7월 개정된 인사청문회법에 대한 검토도 부족했던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김진국 법무비서관은 "법리 검토를 충분히 했다. 조순형 의원이 (법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재판관 동의안을 뺀 것은 실수"라며 "소장 임기를 6년으로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시각도 곱지 않다. 한 특위 위원은 "청와대 참모들의 미숙함이 전 후보자를 크게 망가뜨렸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의원은 "비서실장이 후보자를 직접 찾아가 대통령의 지명 사실을 알렸어야 했다"며 "청와대에 경륜 있는 사람들이 적다"고 꼬집었다.

김정욱.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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