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5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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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김창숙,이승만에 깊은 반감/“외군업고 친일파 돈으로 정권독점한 사람”주장
나는 틈을 내 김창숙선생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 그는 전동여관에서 서대문밖 죽첨정의 2층 벽돌집으로 옮겼었다. 지금은 그 동명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죽첨이란 것은 조선조 말기 조선에 공사로 와 갖가지 악행을 저지른 일본인 죽첨진일랑의 성인 것이다.
일본 침략자들은 조선을 차지하고는 서울이나 부산등 도시의 동이나 거리이름에 그들의 성을 붙여 이름지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금의 소공동을 그들은 하세가와(장곡천) 정이라했다. 그것은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한 장곡천호도육군대장의 성이다.
당시 심산(김창숙)의 방에는 언제든지 민족주의자들이나 유림들이 찾아와 있어 그들의 이야기는 나의 정치적 식견을 넓혀주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분석한 사회과학이론이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반봉건 전 자본주의 단계에 있었다. 또 발달한 자본주의사회라 할지라도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다.
공산주의국가 소련에 있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이 의문이 항상 내머리에서 떠나지않았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민족정기와 사회정의」. 나는 이의 실현을 위해 마르크스 이론을 택해 내 목숨을 바쳐 싸워왔고 또 싸우고 있지않은가?
내가 모스크바공산대학을 나온 공산주의 지도자들인 박헌영ㆍ권오직ㆍ조두원의 이야기를 들을때는 우리나라 역사나 전통과는 인연이 없는 일반적ㆍ보편적 진리를 듣는 것같은 감이 들었다. 이것은 마치 교회에 가서 목사의 설교듣기와 같았다.
목사의 설교에 대해 그것은 틀렸다고 반박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들의 말에는 반박할 수 없는 보편적 진리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나의 머리와 가슴을 다 채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심산의 방을 자주 찾았다. 물론 심산은 내 동지의 아버지이며 그에게 가면 우리집에 간 것 같은 따스한 분위기가 있었다. 또 거기에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있고 전통이 있고 민족정기가 있었다. 나는 그 민족정기를 호흡하러 갔다.
심산의 말은 항상 박헌영보다 더 과격하며 추상같았다. 박헌영은 이승만에 대해 비판은 하나 증오감은 표시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심산은 이승만말만 나오면 상을 찌푸리며 불구대천의 원수같이 증오감을 표시했다. 동시에 친일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산의 견해에 따르면 이승만은 우리민족의 완전독립을 배신하고 세계열강의 위임통치를 요청한 자이며 상해임정의 분열은 물론 미국에 가서는 안창호의 기반을 뺏으려고 독립운동까지도 분열시키고 지금은 외군의 정치적 비호아래 친일파의 돈으로 정권을 독점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심산은 나에 대해,박헌영과 여운형이 수립한 인민공화국에 대해,또 그 수립과정에 대해서도 공산당을 맹렬히 공격했지만 특히 『왜 하필 이승만을 주석으로 정했는가』고 맹비난했다. 그는 『이승만이 아니고 백범을 주석으로 추대했더라면 그래도 체통이 서지』하며 『열강의 조선위임통치를 부르짖으며 자기를 대통령으로 추대한 상해임정을 부인하고 미국으로 갔던 자를 주석으로 추대했다가 그런 자에게 또 부인당한 공산당이 무슨 정치적 안목이 있느냐』고 비난을 계속했다.
이에 대해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가 없어 『이승만이 비록 결점이 많다해도 국민들 가운데는 그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고 또 미국의 민주주의와 장개석의 민주주의를 비교해 볼때 역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생활한 이승만이 비교적 낫다고 그랬을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심산은 화를 벌컥내며 『자네들은 백범과 임정이 장개석주석의 비호를 받았다고 장개석의 앞잡이처럼 늘 이야기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야. 백범과 임정은 언제나 조선독립을 높이 내걸고 태극기를 앞에 세우고 살아왔어. 미국에서 누가 태극기를 내세우고 산사람이 있는가?』하며 꾸짖었다.
나는 사실 임정내의 인간관계를 잘모르고 있었다. 심산과 백범이 그렇게 친밀한 관계인줄도 몰랐다. 그러나 심산의 화를 풀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출입금지를 당할까봐 『백범선생과 임정지도자들이 풍찬노숙하시면서 일편단심 조국광복을 위해 투쟁한 것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애국자들이 장개석의 비호는 받았다 해도 국가민족의 이익에 관해서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하고 사과했다.
심산은 곧 성을 풀고 웃는 얼굴로 『이사람아! 정말 우리는 소국이네. 사실 외국의 영향은 크네. 자네들도 친소파라고 비난당하고 있지않은가. 주의해야 되네. 우리나라같이 소국이고 또 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에는 언제든지 「이완용」이 있는 것이네. 그리고 이완용이가 한사람 두사람이 아니네』하며 타일렀다.
내가 심산에게 꾸중을 들은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에서 그때 일이 사라지지 않는다. 심산은 정말 야심이 없는 꼿꼿한 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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