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④ 소설 - 김인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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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옥, 파비안느'

줄거리=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정교하게 얽혀 있다. 하나는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수령옹주 묘지(墓誌)에 얽힌 사연이다.

거기엔 고려시대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왕족과 혼인한 수령옹주의 삶이 기록돼 있다. 수령옹주는 여성으로서 영예로운 삶을 살았지만 어머니로서는 불행했다. 자신의 딸을 원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수령옹주의 묘지를 해독하는 주인공 '그녀'의 이야기다. 아니 그녀와, 그녀를 버리고 브라질로 떠나버린 어머니의 이야기다. 어머니의 한국 이름은 조동옥이고, 브라질 이름은 파비안느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어머니는 '개잡년'으로 통하고 있었다. '개잡년'이 한국에서 욕이란 걸 모르는 브라질 사람들이 평소 어머니가 버릇처럼 쓰는 말을 어머니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다.

막판에 밝혀지는 모녀 사이의 비밀이 놀랍고 가슴 시리다. (창작과비평 2006년 봄호 발표)

◆ 김인숙 약력

▶1963년 서울 출생 ▶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칼날과 사랑'(93년) '유리구두'(98년) '그 여자의 자서전'(2005년) 장편 '핏줄'(83년) '79~80 겨울에서 봄 사이로'(87년) '먼길'(95년) '봉지'(2006년) 등 다수 ▶한국일보문학상(95년) 현대문학상(2000년) 이상문학상(2003년) ▶2006년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조동옥, 파비안느'

자식 떠나보낸 어미의 처절함
장인적 솜씨로 세련된 재구성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힘든 소설이 있다. 등장인물이 수십 명인 것도 아니고 사건이 배배 꼬인 것도 아닌데, 몇 문장으로 줄여 말하면 영 맛이 떨어지는 소설이 있다. 올해 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작 '조동옥, 파비안느'가 딱 그렇다.

간단히 말해 소설은 어미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세상 모든 어미의 관한 이야기다. 자식을 향한 어미의 심정을 소설은 한 마디로 압축해 보여준다. '통입골수(痛入骨髓.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골수에 사무침)'. 딸을 원나라에 조공으로 바쳐야 했던 1000년 전 어미(수령옹주)의 마음은, 이혼한 남편에게 딸을 맡기고 16년 전 브라질로 떠나버린 어미(조동옥)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세상 모든 어미의 이야기이니, 소설은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김영찬 예심위원이 심사 와중에 "울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보통 이런 경우, 소설은 신파로 빠지기 일쑤다. 울어라, 울어라, 이래도 안 울래? 라고 채근하는 문학도 여럿이다. 그러나 후보작은 빤한 눈물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소설은 의외로 세련됐다. 아니, 매우 영리하다.

그 첫째 증거가 치밀한 구성이다. 1000년 전 수령옹주의 사연과 '그녀'의 현재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전체 서사를 꼼꼼히 교직(交織)한다.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이야기도 다시 셋으로 나뉜다. 오늘 '그녀'의 이야기와 16년 전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브라질에서 날아온 편지까지.

시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면 그나마 고맙겠다. 그러나 소설은 시간과 공간을 자유로이 내왕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행위는, 여기저기 흩어진 이야기 조각들을 순서에 맞게 늘어놓는 일처럼 고단하다. 김형중 예심위원이 "낯설지 않은 모성이란 주제를 구성의 중층성과 장인적 기술을 통해 감동적인 소설로 재구성한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며 칭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소설이 영리한 둘째 이유는 의도적인 생략과 반전에 있다. 소설엔 분수령이 되는 두 가지 사건이 등장하는데, 두 사건 모두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다. 부러 생략한 것이다. 그 하나가 16년 전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된 사연이다. 작가에게 물었더니 "처음엔 들어있었는데 나중에 뺐다"고 답했다. 전체 서사를 방해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또 다른 사건은 여기에서 공개하기 곤란하다. 작가 스스로 "모든 걸 독자 입 안에 넣어줄 수는 없지않느냐"고 되물은 대목이기 때문이다. 넌지시 암시만 함으로써, 이 사건은 외려 막판 반전의 역할을 한다.

작가는 지금 중국 베이징에 있다. 현지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단둘이 살고 있다. 소설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딸을 위하는 어미의 마음이 한 편의 지순한 모정 소설을 낳은 것이리라. 작가에게 물었다. 왜 제목이 '조동옥, 파비안느'인가.

"조동옥과 파비안느는 그녀의 어머니 이름이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산 인물이지만 하나의 인물이다. 딸의 이름은 굳이 없어도 됐다.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세상의 모든 어미의 이야기이다. 어미의 이름 말고 다른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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