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5차 중동전쟁 터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첫째, '이스라엘 대 헤즈볼라'의 대결이다. 이번 무력 충돌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병사 납치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또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남부 레바논과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향해 설치한 약 1만2000기의 미사일에 대한 위협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카나 참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양측의 피해와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에 전쟁 피로(combat fatigue)로 인해 제3국이나 유엔의 중재로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이스라엘 대 아랍' 즉, 중동전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지금 이스라엘.헤즈볼라 양측은 모두 상대방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한다는 엄청난 목표를 천명한 상태다. 시리아.이란은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이라크.아프가니스탄.알카에다 등 불안한 중동 정세가 아랍의 단결이라는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산유국들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오일 위기는 현실이 될 수 있다. 특히 핵무기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주창해온 이란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느냐 마느냐는 제5차 중동전쟁의 핵심적인 변수다.

셋째, 60여 년간 곪아온 중동 사태가 '친이스라엘 대 친아랍'의 3차 세계대전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근 헤즈볼라 대변인은 "2000명의 정예 요원을 세계 각국에 침투시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익을 파괴하겠다. 만약 미국이 3차 세계대전을 불러일으킨다면 우리는 대환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내에서도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등이 3차 세계대전의 징후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뿌리는 중세의 십자군 전쟁까지 올라가야겠지만 근본적으로 제1,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역사적.정치적 부산물이다. 그래서 사태 해결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이목은 예루살렘이나 베이루트 못지않게, 중동의 세력 균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다. 전후 미국의 중동정책은 소련의 봉쇄정책에서 출발했으며 영국.프랑스에 이어 1960년대 이후 적극 관여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지역의 패권이 소련.유럽.아랍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외교적.군사적 수단을 사용해 왔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종교적.이념적.경제적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9.11 이후에는 대테러 전쟁의 동반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지역을 공격하면서도 헤즈볼라라는 무장단체를 공격 대상으로 지목해 미국의 대테러 전쟁과 코드를 일치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헤즈볼라는 지난 20여 년 동안 해외 미국대사관과 공항, 미국인 거주지 등에 자살 폭탄테러를 감행해 수백 명을 살상했다. 그래서 알카에다 못지않은 '미국의 적'으로 인식돼 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휴전 원칙에는 다국적군이 레바논 정부를 지원해 헤즈볼라의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는 종래의 대테러전 원칙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국내외의 이스라엘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납치된 병사 석방을 통해 사태의 전환점을 만들고, 시리아.이란 등의 개입을 차단하여 제5차 중동전쟁을 막는 방향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웃과 끊임없이 전쟁을 이어가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운명은 앞으로 중동의 세력 균형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70년대 초 배럴당 2달러였던 원유가가 오늘날 35배 이상 치솟았다는 현실은 중동의 전쟁과 평화가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김정원 세종대 석좌교수.전 외교부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