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현 `80대 노인 청력, 희망 안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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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청은 장애가 아니다"

치료 불가능 난청 판정을 받은 백재현이 청각 장애 후원단체 사랑의 달팽이 홍보대사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렸을 적 개천에 빠져서 왼쪽 귀가 나빠진 백재현은 성장하면서 오른쪽 귀도 같이 나빠졌다고.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채로 살아오던 그는 뮤지컬 연출을 하며 어려움이 있어 올해 2월에 병원에서 80대 노인의 청력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스스로 장애인임을 알리는 것 같아 처음에는 절망감을 느꼈던 백재현은 지금 눈이 나쁘면 안경을 쓰듯이 귀가 나쁘면 보청기를 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사실 보청기를 끼면 수치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수치감이 10이라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편리함은 100이다. 이 편리함을 수치심 때문에 감수하고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KBS '개그 콘서트'에 출연하며 인기 개그맨으로서 명성을 쌓아 온 그는 이제 뮤지컬 연출가로서 맹활약 중이다. 어느덧 주변 사람들은 "개그맨 백재현 보다는 연출가 백재현이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백재현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로에서 연극무대에 올랐다. 벌써 20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방송활동을 시작했지만 TV 출연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제한적이라는데 고민을 거듭했다.

그 즈음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에 대한 선택의 갈등을 거듭하던 백재현은 다시 대학로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며 뮤지컬을 제작하기로 했다.

집까지 팔아서 뮤지컬 '루나틱'을 제작할 정도로 뮤지컬 제작에 모든 걸 쏟아 부었던 백재현. 이제는 사람이 변할까 봐 돈을 모으고 싶지 않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루나틱'을 제작할 때 투자자를 구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창작뮤지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그간 벌어 둔 돈과 집을 내놓아야 했고, 지금은 보증금 500만원에 40만원짜리 열 평 남짓한 월세방에서 젊은 연기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뮤지컬 연출을 하는 땀 흘릴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다.

뮤지컬 '루나틱' 스태프들은 백재현을 베토벤에 비유해 '백토벤'이라 부른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루나틱' 공연을 끝가지 지켜온 그의 모습 때문이다.

뮤지컬 연출가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러낸 백재현은 뮤지컬 '페이스오프'(FACE OFF)로 제2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반전을 거듭하면서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페이스오프'가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지 기대가 크다.

백재현은 지난 5월 26일 청각장애 후원단체 사랑의 달팽이 홍보대사에 위촉되어 청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청각장애는 들을 수 있게만 해주면 정상인과 똑같이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후원이 청각장애인의 재활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갓 태어난 아이가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다고 들었다"며 성원을 당부했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수술비가 없어 수술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평생 난청장애로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홍보대사로서 각오를 밝히며 "난청은 장애가 아니다"라며 장애판정을 받고 힘들어 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난청에 대한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코미디 연기자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코미디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백재현. 난청장애를 딛고 연출자로 개그맨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쳐가는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사진(아래)은 '사랑의 달팽이' 홍보대사에 위촉패를 받은 백재현과 신임회장에 위촉된 탤런트 김민자(가운데). 오른쪽은 임천복 '사랑의 달팽이' 대표]

<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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