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 24년 '이란 여성의 대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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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시린 에바디(56)는 숨막히는 이슬람 정권 하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의 인권을 위해 지난 24년간 투쟁해 왔다. 1947년생인 에바디여사는 호메이니옹이 주도한 이슬람혁명을 계기로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테헤란 법대 졸업 후 74년 이란 최초의 여성 법관으로 임용돼 법률가의 길을 걷던 에바디는 호메이니가 들어서면서 하루 아침에 법복을 벗어야만 했다.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이맘(이슬람 성직자)들이 "여성은 재판을 담당하기에는 너무나 감정적"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해임했기 때문이다.

79년 테헤란 법대 교수로 돌아간 에바디는 여성 인권신장에 앞장섰다. 특히 이혼과 상속 등 여성에 불리하게 규정된 이란의 가족법 개정을 추진했다.

또 전통적인 이슬람법에 따라 살인자가 사형(死刑)을 피하기 위해 희생자의 가족에 지급하는 보상금이 여성의 경우 남성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불평등 법률 조항의 개정에도 앞장섰다. 이런 이유로 영국 BBC방송은 그녀를 이란 여성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부르기도 했다.

에바디는 이란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평화적이며 민주적으로 접근하는 '비폭력' 노선을 걸어왔다. 그러나 2000년 6월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이슬람 정권에 의해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유포한다'는 이유로 3주간 구금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노르웨이 시민단체가 수여하는 '라프토(Rafto)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여성 무슬림으로서는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에바디는 이슬람 종교의 현대적 해석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깨어있는 무슬림'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6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에바디는 "내가 문제삼는 것은 이슬람교가 아니라 가부장적 문화"라며 "현실에서 집행되는 투석(投石) 형벌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어디에도 근거가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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