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 끌어다 집·주식 산다고? 은행 심사 깐깐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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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행권의 신용대출 심사가 더 엄격해질 전망이다. 최근 신용대출이 폭증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의 우회로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다.

신용대출 증가 폭 석달 새 7배로 #코로나로 가계 자금난 빠질 수 있어 #정부 직접규제 곤란, 은행권 조여

은행권 신용대출 증가세는 최근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7월 한 달 새 시중은행의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 잔액은 4조원 급증했다. 지난 4월 6000억원이던 증가 폭이 석 달 새 7배로 커진 셈이다. 지난달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증가 폭도 2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신용대출 잔액 추이

시중은행 신용대출 잔액 추이

금융당국은 신용대출 급증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파악하고 있다. ▶주식매매자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생활안정자금 수요 ▶주택 매매자금 수요다. 이 가운데 정부는 특히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신용대출까지 끌어서 주택을 구입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 23일 소비자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향후 주택담보대출이 더 까다로워지면 신용대출도 어려워질 수 있다. 미리미리 받아놔야 한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최근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최저 1%대로 떨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낮아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한 것도 이 같은 흐름을 부추긴다.

금융위는 이미 두 차례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지난 19일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금융리스크 점검반 회의에서 “과도한 신용대출이 주택시장 불안으로 연결되지 않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준수 등 관련 규정을 철저히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금융위는 21일 금융회사의 DSR 준수 여부를 현장검사 등을 통해 지도·감독하겠다고 공언했다. 현재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는 DSR이 40%(은행권) 이하여야 한다.

은행권도 신용대출 심사 고삐를 바짝 죌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19일 임직원들에게 ‘신용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의 우회 지원 통로가 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달라’는 공문을 내렸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당국이 직접 신용대출 규제를 강화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영끌’ 대출이라고 하더라도 신용대출 자체가 한도가 크지 않아서 주택담보대출을 대체하긴 어렵다”며 “당국이 직접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 12일 금융협회장들과 간담회 직후 “(신용대출 증가가)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워서인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용인지 성격을 아직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서 신용대출을 억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대출을 조이기 시작하면 한계차주들에게 위험이 온다. 공식적으로 규제를 강화하기엔 정부도 리스크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당국이 행정지도 수준의 지침만 내릴 가능성이 크다. 행정지도란 행정기관이 소관 사무 내에서 특정인에게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는 지시나 권고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은 DSR이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관리 목적의 행정지도 정도의 카드를 쓸 수 있다”며 “은행이 대출용도나 사용처를 전부 확인하긴 어려워서, 자체적으로 한도와 금리 결정을 보수적으로 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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