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긍정 측면] "아프면 병원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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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을 앓고 있는 직장인 손은정(31.여.경기도 안산시)씨는 의약분업 전에는 약국에서 해결했지만 분업 후에는 한 달에 한 번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약을 복용한다.

그는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만 사 먹었는데 요즘은 처방전을 받으러 가서 의사와 상담하고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어 한결 마음이 놓인다" 고 말했다.

새로운 담합이 생기고 약제비가 급증하는 등 의약분업의 문제점이 많이 노출되고 있지만 의약품 암시장(블랙마켓)이 크게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孫씨처럼 아프면 약국을 찾던 환자들이 병원부터 가야 한다는 쪽으로 의식이 바뀐 점이 보이지 않는 효과다.

경기도 안산시 李모 약사도 "환자가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달라고 하면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오라고 안내한다" 고 말했다.

약사 스스로도 '의사 노릇' 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덕분에 정확한 병명도 모르고 약국에서 약을 마구 사먹던 관행들이 많이 사라졌다.

의사와 약사가 환자를 교차 점검하는 경우가 늘면서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있다.

서울 강남구 한 병원의 내과의사는 "병원의 처방전이 공개되면서 약을 처방할 때 같은 종류의 약 가운데서 효과가 좋은 약을 신중히 생각해 결정하는 점 등이 과거와 달라진 것 같다" 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보건정책국 관계자는 "의약분업 시행 전 대학병원의 원내 약국이 의사의 오처방을 지적하는 비율이 5%에 달했다" 면서 "의약분업으로 일반 의원의 처방을 다시 한번 약사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오처방이 줄어들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의약품을 둘러싼 검은 거래도 많이 줄었다. 상위 랭킹 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은 "종전에 약값 마진을 받던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약품채택 비용(랜딩비)도 많이 줄었다" 고 말했다.

약 조제권이 의사에게서 약사로 넘어가면서 약을 통한 음성적인 수입을 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정부의 수차례 의료보험 수가(酬價)인상이 의사들의 리베이트 고리를 끊는데 기여한 측면이 있다.

항생제와 주사제 사용량을 줄이는 의사들도 많이 생겼다.

지방의 C의원 원장은 " '항생제를 마구 처방하는 의사' 로 소문날까봐 애들에게는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는다" 면서 "되도록 주사제 대신 먹는 약을 처방하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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