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관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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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백두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우리 겨레엔 하나의 신앙과도 같은 존재다. 그래서 육당 최남선은 『조선에는 구태여 석가며 공자며 기독을 굳이 요하지 아니한다』고까지 했다. 만고에 침묵한 채 성전을 토하는 백두산이야말로 바로 우리 겨레의 종교며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육당은 그의 백두산기항에서 『백두산은 조선일체의 집약이며 조선최고의 전괄적 가치이며 조선만의 절대적 정화이기에 조선인이라는 것 이외에는 어느 아무 것도 들고 메고 가서도 안되고, 또 속에 넣고 생각하며 가도 안 된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1936년 여름백두산을 등정한 유달영씨의 회고를 보면 당시 등반대는 동물, 식물, 광물, 기상, 지리, 역사등 각분야 전문가 35명을 포함, 모두 1백 여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경비대와 인부 등 지원인원이 3분의2를 차지했다. 여기에 장비를 운반하는 말 20필, 경찰용 기마 5필, 연락용 전서구까지 참여했었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일화는 이 등반대의 백두산에 대한 거의 신앙에 가까운 마음가짐이었다. 그들은 성산을 더럽힐까봐 대소변을 받는 변기를 휴대했는가 하면, 산행 때의 큰소리가 혹시 산신령을 노하게 할지도 모른다하여 소근소근 대화를 나누었고, 심지어는 산정에 올랐을 때도 감히 『올랐다』 는 말을 쓰지 못하고 『내려섰다』는 표현을 했다고 한다.
백두산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경건하고 영원한 정신적 고향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최근 북간도에 갔다가 백두산에 오른 작가 박경리씨도 중앙일보의 「대륙연구강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백두산 정상에서 많은 관광객을 만났지만 한국의 관광객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데가 있었다. 천지를 보는 그들의 눈빛은 생기에 넘쳐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영혼을 그곳에서 되찾는 듯한 눈빛이었다.』
엊그제 백두산에 올랐던 한국인관광객 2명이 하산도중 돌풍에 휩쓸려 절벽에서 추락,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한겨울인데도 아무런 등산장비 없이 운동화를 신고 산에 올랐던 모양이다.
육당의 백두산 신앙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행여 산을 더럽힐세라 변기까지 가지고 갔던 선배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런 불행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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