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남북 장관급회담 놓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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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통일부 장관(右)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 열린우리당사를 방문해 김근태 의장(左) 등 당직자에게 남북장관급회담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한국과 미국의 '북한 다루기'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14일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쌀 요구 발언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종석 장관은 이날 정부 인터넷사이트인 국정브리핑에 글을 올렸다. 그는 "'이번에 남북 장관급회담을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은 회담 개최 배경에 대해 정확한 이해 없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회담 개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마당에 스스로 대화의 장을 닫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도 이 장관을 두둔했다. 정태호 대변인은 "정부 입장에서는 의미있는 회담이었다"고 강조했다.

반면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내세우면서 남측에 쌀.비료를 요구한 데 대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비난했다. 그는 "북한이 남한을 보호하는 대가로 쌀과 비료 등 경제지원을 요구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쌀을 요구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남한을 보호할 능력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북한은 말도 되지 않는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데 이는 그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롯데호텔에서 열린 프린스턴대학 동창 모임에 참석해 강연했다. 모임에는 정운찬 서울대총장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 "북한은 6자회담 나와야"=버시바우 대사는 이날 6자회담을 통한 북한의 미사일.핵 문제 해결원칙을 확고히 밝혔다. 다음은 그의 발언 요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핵무기 개발은 한반도에 위협을 초래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정치적 이유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말한다. 무력과시 부분도 있지만 안보적 측면을 봐야 한다. 중.단거리 미사일은 한국과 일본, 러시아까지 위협하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은 북한이 핵 보유국이기에 더 심각하다. 외교적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하며, 지난해 9월 6자회담에서 약속한 사항들을 실천(commit)해야 한다."

◆ '여론 탓' 되풀이한 이종석 장관=남북 장관급회담의 파행.결렬로 궁지에 몰린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이날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 여론을 맞받아쳤다. 다음은 이 장관이 국정브리핑에 올린 글의 요지.

"일부에서 정부가 미사일 발사에 대해 '속시원한 항의 한 번 못했다'고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하지만 북측 대표단장의 선군정치 주장에 대해 나는 '더 이상 그런 주장을 말라'고 요구했다. 내가 발언을 이어가자 북측 단장은 저지하려 했고 10여 분간 회의가 중단될 정도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대응했다. 1994년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 집권 시절 북.미 간 데탕트(화해)에도 불구하고 남북 대화가 수년간 단절된 뼈 아픈 경험이 있다. 장관직 10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며 국민들께 부끄럽지 않게 행동했다. 장관직에 연연했더라면 파행이 예상됐던 회담을 피했을 것이다."

이영종 기자, 유호연(프린스턴대 화학과 3년) 인턴기자

<yjle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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