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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행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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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찰스 디킨스는 일찌감치 돈과 행복의 상대성을 간파했다. 1850년 작 '데이비드 코퍼필드'에서 그는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19파운드 6펜스면 행복한 사람. 1년 소득이 20파운드, 1년 지출이 20파운드 6펜스면 불행한 사람"이라고 적었다.

'돈과 행복'의 관계를 따져보는 일은 꽤 오래됐다. 2000년 전 중국에선 '돈=행복'이 상식처럼 통했던 듯하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좇는 인간 군상이 넘쳐났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런 세태를 한탄했다.

"인간들은 누구든지, 배우지 않아도 부(富)를 원한다. 젊은이들이 무덤을 도굴하거나 화폐를 위조하는 것은 모두 재물을 위해서다. 무희가 늙은이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도 돈을 위해서고, 관리가 문서를 위조하는 것도 뇌물의 유혹 때문이다."

행복계량학파는 돈과 행복이 꼭 비례하진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선도자 격인 에드 디너 교수는 2004년 포브스가 뽑은 미국 400대 부호와 인터뷰를 했다. 응답을 7점 만점으로 계량화한 결과, 부호들의 행복지수는 5.8. 얼어붙은 땅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족이나 케냐 사막의 유목 민족 마사이 족과 같은 수준이었다.

타임스지의 연구 결과도 비슷했다. 행복을 주는 요인 중 돈은 14위. 애정.자유.유머 등보다 훨씬 순위가 처졌다.

이론은 그렇다지만 현실은 좀 다르다. 여전히 돈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처럼 보인다. 이유가 뭘까. 경제학자 리처드 라야드는 '행복, 신과학의 교훈'에서 '사회적 비교론'으로 이를 설명했다. 돈은 남과 비교할 때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다. 워릭대학의 경제학자들이 실험을 해봤다. 영국 직장인 1만6000명에게 물었다. "당신이 10만 파운드를 받는 대신 절친한 동료가 25만 파운드를 받는 것과, 당신은 5만 파운드를 받고 동료가 2만5000파운드를 받는 것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응답자 거의 모두가 후자를 선택했다.

3일 워싱턴포스트는 '돈과 행복'의 함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워런 버핏을 분석했다. '버핏은 왜 300억 달러가 넘는 거금을 쾌척했을까.' 결론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이 신문은 버핏이 "천국으로 가는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이 길이 가장 큰 길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버핏은 부의 크기가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것이다. '바늘 구멍을 통과한 낙타', 버핏은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