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 인하 뒷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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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줄곧 '보유세(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현실화 원칙'을 강조해 왔다. "정부가 부동산투기를 잡기 위해 지나치게 세제정책에 의존한다"는 시장의 비판에 대해서도 "가진 만큼 과세한다"는 주장으로 맞불을 놓았다. 노 대통령은 심지어 "수십 년간 변하지 않을 세제를 만들어 놨다"고 했다.

그러던 노 대통령이 이번에 일부나마 재산세 인하를 받아들인 것은 논리적으로 투기 억제를 막기 위한 보유세 강화 원칙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서민과 중산층의 재산세 부담만 덜어 주는 고육지책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게 강 의장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이번 조치를 부동산 정책 기조 변화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숙명여대 강인수(경제학) 교수는 "재산세 인하 조치는 보유세 현실화 원칙이 왜곡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며 "처음이 어려울 뿐 한 번 손댔으니 앞으론 더 쉽게 바꾸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 S부동산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 세제가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하는 다주택 보유자들이 앞으로 매물을 더 안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재산세 인하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한 달에 몇 만원 수준꼴인 이번 재산세 부담 완화가 가장 값비싼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인 주택 거래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느냐"며 "나빠진 국민 감정을 조금이라도 풀어 보려는 '생색내기' 발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반응도 냉소적이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수지정부동산 정수지 사장은 "최근 두드러진 강남 아파트 시장의 거래단절 현상은 높은 양도세 부담과 대출제한 등에 따른 것이지, 재산세는 매수.매도자 어느 쪽도 의식조차 하지 않는 부분"이라며 "수억원대에 달하는 양도소득세 때문에 팔려는 사람들도 꼼짝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발표보다는 추후 논의키로 한 거래세 인하 방안을 더 주목하고 있다. H건설 관계자는 "거래세가 합리적으로 인하되면 침체한 분양시장이 다소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백성준 연구원은 "이번 재산세 인하 조치가 별다른 효과는 얻지 못한 채 앞으로 정부 정책이 변할 수 있다는 기대감만 부풀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준현.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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