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기업의 사회적 기능은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이며 고용과 소득 기회의 확대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적자를 내고 부실화하면 그것은 하나의 사회악을 범하는 것이다. 자본·설비·사람이라는 귀중한 사회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기능, 사회적 책임이 새삼스러운 문제는 아니지만 폐업이냐, 적자 존속이냐의 갈림길에선 대우 조선 사태는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그동안 기업의 부실화 문제에 많이 부닥쳐왔다. 그래서 정부 주도의 정리도 있었고, 엄청난 금융 특혜 지원도 있었다.
부실화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시설 투자가 적정 가격에 적정 규모로 행해지지 못한 것, 그 시설과 인력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한 것, 노동 생산성에 비해 너무 인건비가 높은 것, 자금 운용이 방만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부실화의 책임은 1차적으로 경영자에게 있게 마련인데 국민 경제에 부담을 줄 정도로 큰 부실로 심화된 것은 거래 은행과 정부 당국에도 책임이 있다.
기업을 살리는데는 마땅히 거래 은행과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러나 살린다고 더 중병 들게 하고 무리한 부담을 지면서까지 살리려한 척은 없었던가. 어느 특정 기업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해운의 경우는 숫제 업계 전부에 그 같은 무리를 한 선례가 있다.
정부의 그 같은 지원은 흔히 대기업이 대상이었다. 그래서 정부 정책이 대기업 편중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무리한 지원을 하는데는 물론 그 나름의 명분이 있다. 부실 기업의 정리에 뒤따르는 대량 실업 문제, 연관 산업에의 파급, 신용 공황, 국제적인 공신력 등의 문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체질, 우리 경제의 규모를 생각할 때 지금까지의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된다.
『큰 기업이 문닫으면 큰일난다』…그래서 큰 기업은 『설마 쓰러지게 내버려두겠느냐』 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 의존 의식 때문에 기업들이 뒷감당을 생각지 않은 채 무리하게 자꾸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과격한 노사 분규가 있을 때마다 근로자 측에 공동체 의식을 당부해왔다. 기업은 남의 것이 아니고 바로 근로자 자신의 생활 터전이라는 것, 그래서 함께 지키고 가꾸고 키워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노사 분규와는 다른 측면에서, 바로 기업의 부실화 문제에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새삼스럽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기업 풍토에서 기업인들이 자립과 자생 의식이 결여된 채 의타적 습성이 체질화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때라 생각한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사회적 책임은 다하지 못한채 오히려 사회·경제적 비중과 대외 공신력을 빌미로 배짱을 내미는 자세는 없었는지 반성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러한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직장을 파괴하는 과격 근로자와 다를 바 없이 국민 경제를 왜곡하고 취약케 하는 반사회적 기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업의 주체는 경영자와 근로자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경영자의 자생의식, 기업의 사회적 기능이 가능할 수 있게 하는 근로자의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절실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