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발언 냉각 정국 출구 모색|민정·평민당 막후 협상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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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정권 종식 투쟁 광주 발언으로 냉각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여야가 막후에서 조용히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전두환씨 증언, 5공 핵심 인사 처리 문제 등 난관이 첩첩이 쌓여 있어 전도불명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중진 회의에서 매듭짓지 못했던 중요 현안들을 개별 영수 회담을 통해 풀어보려 했던 민정당은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광주·전주 방문 때 정권 종식 투쟁 등 강경 발언을 이유로 들어 영수 회담을 일단 연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담 자체를 안할수도 있다는 입장까지 표명하고 나섰다.
김대중 총재의 광주 방문이 과격 시위의 분수령이 되기를 기대했던 민정당은 김 총재의 「정권 종식 투쟁 선언」이 나오자 당혹감과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다.
민정당은 김 총재가 미군 철수 검토 발언까지하자 더욱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정국 교착의 책임을 김대중 총재에게 미루고 있다.
그러나 영수 회담 등 정치 일정을 적극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는 김대중 총재의 믿을 수 없는 처신이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전두환·최규하씨의 국회증언, 정호용씨 등 5공 핵심 인사 처리 문제 등이 야당과의 일부 합의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전을 기대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윤환 총무가 지난달 30일 백담사를 방문, 여야 합의 배경 등을 설명하고 왔으나 전씨 측이 1회 증언으로 특위를 종결한다는 대통령과 4당 대표 등 5자 각서를 요구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워 『지금 상태로는 전씨 증언이 당분간 어렵다』는 비관적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또 정씨 처리 문제도 최소한 「공직 사퇴」를 요구하는 평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그렇다고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도 없는 상태다.
김 총무는 『5공 매듭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핵심 인사 처리 문제의 경우 민주·공화당이 중진 회의 때는 국회 고발 처리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평민당의 반발에 부닥쳐 다시 「공직 사퇴」로 회귀하는 자세를 보여 더욱 어렵게 꼬여 있다고 민주·공화당에 걸었던 기대에 실망감을 표시했다.
평민당이 강경 자세를 고수하고 민주·공화당마저 입장 정리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영수 회담 등을 열어봐야 아무런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사전 정지 없이는 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민정당은 예정됐던 영수 회담 등의 직선로를 일단 피하고 막후 협상 등 우회로를 택해 매듭을 풀어간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일본에서 돌아온 김 총무가 『영수 회담을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 늦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기본 입장 아래 8일부터 활발한 야당 접촉을 하고 있으나 야당에 마땅한 우회로를 제공할 수 있을는지 문제다.
때문에 민정당 측은 전씨 증언을 듣고 바로 핵심 인사의 국회 고발로 매듭짓는 방안을 가지고 야당 측 설득에 나서면서 지자제나 선거법 협상을 조기에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눈치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광주 방문을 전후해 정리한 앞으로의 정국 운용 기본 방향은 대체로 외강내유로 집약될 수 있다.
광주 발언에서 정권 종식 투쟁이란 배수진을 치면서도 6개월이란 유예 기간을 둔 것이나 7일 기자 간담회를 통해 강경으로 선회한 것이 아님을 굳이 강조하는 것 등이 이를 증명해준다.
특히 자신의 이번 청와대 회담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했으면서도 영수 회담의 필요성은 재차 강조하는가 하면 야 3당 총재 회담의 개최를 요구하는 것 등은 강경 속에서도 협상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사실 김 총재가 처음부터 학생들의 도발을 예상했으면서도 광주행을 감행한 것은 시민들로부터 그 동안의 업적을 추인 받으면서 학생들의 과격한 주장은 대여 및 다른 야당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예상외로 심각한 학생들의 도발에 부닥쳐 대 정부 투쟁 노선을 강조하다보니 외강의 부분만 크게 부각되고 내유 부분은 감추어져 버렸다.
따라서 김 총재는 이 부분에 대한 시각을 고쳐줄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가 귀경 후 기자 간담회를 통해 자신의 입장이 강경한 것이 아님을 애써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김 총재는 자신의 광주 발언은 지금까지의 주장과 다를 바 없으며 목표는 5공 청산과 민주화이지, 노 정권 퇴진이 아니라고 말해 여권의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주력했다.
김 총재가 이처럼 강경 속의 협상 전술을 쓰며 대화의 문을 닫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 것은 대화가 끊기면 평민당이 취할 수 있는 길은 광주를 담보로 한 장외 투쟁뿐이며 이는 자신의 장기적 정국 구도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개될 개헌 협상·선거법 협상·지자제 협상 등은 광주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사안들인 만큼 정국을 타협 국면으로 유도하여 제1야당의 기득권을 충분히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김 총재의 상반된 듯한 최근의 발언들은 김 총재 특유의 「두 줄타기」 접근 방식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총재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으니 이제는 여당 쪽의 조치만 기다릴 뿐』이라며 당장 전투 태세를 갖출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미 정부·민정당 측이 김 총재의 정권 종식 투쟁 발언 때문에 토라져 있는 상황에서 당장 영수 회담의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분위기를 진정시키면서 막후 접촉을 통해 타개의 길을 뚫어보자는 생각인 듯하다.
김 총재가 야 3당 총재 회담을 제의한 것도 한쪽으로는 민주·공화당에 대해 사태 해결의 초점인 정호용 퇴진의 압력을 공동으로 행사토록 부담 지워 여당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는 효과를 노리면서 다른 쪽으로는 타협 노선을 택하고 있는 이들을 앞세워 협상의 명분을 찾아낼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6개월은 화전의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다.

<고도원·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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