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600억원 별장과 체불 속옷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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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시체를 건지려면 8000위안(약 96만원)을 내라."

중국 베이징 시내를 흐르는 작은 하천에 익사한 사람을 건지기 위해 물어야 하는 비용이다. 하지만 돈이 없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족이 익사한 경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은 시체가 저절로 물 위에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신경보(新京報)는 24일 베이징에서 막노동을 하는 민궁(民工.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했다. 시내 룽탄(龍潭) 호수에 빠져 사망한 동생 시체를 찾으려 했다가 "8000위안을 내야 한다"는 경찰 소속 구조수색대의 요구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는 어느 민궁의 이야기다.

이달 21일에도 비슷한 사연이 언론에 소개됐다. 시내 퉁후이허(通惠河)에 빠져 익사한 아내의 시체를 찾으려고 경찰에 실종 신고했으나 "5000위안(약 70만원)을 내야 한다"는 요구에 역시 시체가 수면에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남자의 사연이다.

시내 하천에서 익사한 시체를 건져 올리는 과정에서 베이징 구조대가 요구하는 수고비도 만만찮다. 건져 올렸을 경우 적게는 5000위안을 내야 하고, 건져 올리지 못했을 경우에도 3000위안(약 36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민궁의 임금이 기껏해야 월 1000위안(약 12만원) 남짓 한 현실을 따져 보면 엄청난 액수다.

한때 사형수에게 형을 집행한 뒤 유족들에게 총알 값을 청구한 적이 있었던 중국의 부끄러운 과거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장면이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는 민궁의 힘겨운 도시생활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25일 선양(瀋陽)시 다판(大藩)진의 한 회사 정문에서는 26세의 한 민궁 처녀가 내의만 걸친 채 3시간 동안 시위하는 일이 벌어졌다. 밀린 임금 8000위안을 회사에서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몇 차례에 걸쳐 임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런 방법까지 동원한 것이라고 화상신보(華商晨報)는 전했다.

이에 대해 신경보는 "여성 노동자가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알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임금 체불에 대해 자살로 항의하는 남성 못지않게 충격적"이라며 "이는 결국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는 중국 사회의 부끄러운 약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도시 인근에선 600억원을 호가하는 호화 별장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지만 그 다른 한편에서는 빈부격차와 부정부패에 신음하는 모순이 병존하는 게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다.

유광종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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