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위성 “레이더 영상이 모두를 설득하진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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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영상을 공개해 한·일 갈등이 확대되고 있는 이른바 ‘레이저 조준 문제’와 관련, 지난 28일 영상 공개에 대해 브리핑했던 일본 방위성 관계자가 “영상이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30일 전했다. 한·일 관계에 밝은 도쿄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한국이 조준’ 증거 부족 실토한 셈 #아베 공개 지시에 불만 표출 시각

소식통들에 따르면 관련 기자 브리핑은 28일 오후 5시 일본 정부가 관련 영상을 공개한 직후 방위성 내에서 진행됐다. 당시 브리핑을 주도한 통합막료감부(우리의 합동참모본부에 해당) 관계자는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이 영상이 일본의 주장을 일정 범위, 일정 정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영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거나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영상을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마디로 영상 자체만으로는 ‘한국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를 향해 화기 관제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측면을 스스로 실토한 셈이다.

“영상은 한국 측이 레이더를 조준한 증거로, 영상을 보면 레이더 조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도 거리가 있다.

브리핑 모두에 이런 이례적인 발언이 나오자 참석자들도 술렁댔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발언은 도대체 무슨 뜻이냐” “한국 측이 영상을 보더라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뜻이냐” “그런데도 공개하는 이유는 뭔가”라는 질문이 쏟아졌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방위성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영상의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과의 견해차가 현 시점에서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계속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말한 것”이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피해 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을 비롯한 방위성 내부에선 “한국과의 갈등을 더 촉발할 우려가 있다”며 영상 공개에 반대했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총리 관저가 공개를 압박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영상이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건 아니다’는 브리핑을 통해 방위성이 영상 공개에 대한 내부의 불만을 표출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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