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삽화 확 '리메이크' 새 동화 같잖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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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성냥팔이 소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글
크베타 파코브스카 그림, 이용숙 옮김
베틀북, 32쪽, 9500원

치티치티 뱅뱅
이언 플레밍 지음, 존 버닝햄 그림, 김경미 옮김
열린책들, 144쪽, 8500원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고, 원작을 다시 만드는 리메이크의 경우 여간해서 칭찬을 듣기 힘들다. 다시 만들었으면 뭔가 하나는 새로워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음악보다 책은 더 그렇다. 번역을 다시 하고 장정을 새롭게 한다고 잘 된 리메이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나온 '성냥팔이 소녀'와 '치티치티 뱅뱅'은 점수를 줄 만한 리메이크다.

'성냥팔이 소녀'는 덴마크의 국민작가 한스 안데르센의 너무나 유명한 원작에 혁신적인 그림을 덧씌움으로써 승부수를 띄운다. 체코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인 크베타 파코브스카의 그림은 기존의 어린이 그림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창의적인 스타일을 과시한다. 기존의 어린이 그림책이 주무기로 내세웠던 '아기자기하고 예쁜 그림'이나 '따뜻하고 편안한 그림'을 예상했다면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국제적인 수상 작가인 파코브스카는 그림책을 예술 오브제의 영역까지 확장시킨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촉각적이고 입체적인 그림책을 다수 선보였다. 한 마디로 그림책에 대한 매우 유연한 사고를 보여준다. '성냥팔이 소녀'에서도 그런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예컨대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라고 외치는 가냘픈 소녀의 얼굴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때로는 얼굴이 없기도 하고 때로는 얼굴만 강조되기도 한다.

아이가 크레용으로 마구 갈겨댄 낙서 같은 그림이나 은박지를 오려붙인 콜라주 기법도 시선을 자극한다. 현대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그림들이 낯선 느낌을 자아낼지 아니면 한걸음 나아가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 지는 아이마다 다를 것이다.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2005년)을 맞아 여러 출판사에서 내놓은 안데르센 동화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책이다.

'007 시리즈'를 쓴 이언 플레밍이 노년에 발표한 동화 '치티치티 뱅뱅'을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꼽히는 존 버닝햄의 그림과 함께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버닝햄은 녹색의 마법 자동차 이야기를 한층 고급스럽게 포장해준다. 괴짜 발명가인 포트 중령 내외와 귀여운 두 남매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는" 신기한 자동차 치티치티뱅뱅과 함께 벌이는 갖가지 모험이 버닝햄의 어딘지 익살기 감도는 삽화와 잘 맞아떨어진다. 버닝햄의 그림이 없었다면 아무리 명작 동화라도 심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험에서는 '아니요'라고 말하면 안돼. 항상 '네'라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항상 지루하게 살 수밖에 없는 거야"라는 포트 중령의 멋진 대사를 기억하는 부모 독자들 역시 기꺼이 시간을 할애할 만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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