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의 작가들 강호에 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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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를 원작으로 한 게임 ‘드래곤 라자’의 캐릭터.

무협.판타지.로맨스 등 국내 대중문학작가 400여 명이 처음으로 단체를 결성한다. 19일 오후 2시 서울 코엑스에서 대중문학작가협회 결성식을 열기로 한 것이다. 방대한 독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해 온 대중문학 진영의 첫 집단 움직임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초대회장 내정자인 금강은 "'다빈치 코드' 같은 세계적 베스트셀러는 모두 대중문학인데도 유독 한국에서만 대중문학이 인정받지 못해 왔다"며 "대중문학을 폄하하는 시선부터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중문학의 시장 규모는 연간 300억~400억원대에 이른다. 작가도 2000여 명을 헤아린다. 무협.판타지 소설 '묵향'(전 21권)은 2000~2004년 전국 14개 대학도서관의 대여순위 1위를 차지했다.

◆ 소외된 대중문학=한국만큼 본격문학과 대중문학 간 골이 깊은 나라도 없다. 서점에서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고 정부가 운영하는 여러 문학 지원 프로그램에서도 대중문학은 소외돼 있다. 우수 대중문학을 시상하는 문학상도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일본만 해도 나오키상.야마모토 슈고로상 같은 대중문학 전문 문학상이 여럿이다. 권위뿐 아니라 상업적 성공도 보장받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한국 독자의 반응이다. 한국 소설은 재미없다는 한국 독자들이 일본 대중문학을 찾아서 읽는다. 조성면 평택대 겸임교수는 "대중문학의 가치를 무시하는 문단 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 시장의 위기=한국 대중문학은 단체 움직임이 절실한 위기 국면에 직면해 있다. 2000년 전후 전국의 도서대여점은 2만~3만 개였지만 지금은 6000여 곳에 불과하다. 한국 대중문학의 시장 특성상 도서대여점의 급감은 판매량의 급감으로 직결된다. 독자가 직접 사서 읽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학의 권당 판매량은 도서대여점 숫자와 대체로 일치한다. 따라서 작가 입장에선 최대한 많은 양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인기 무협작가 금강도 "1989년 '발해의 혼'을 쓸 땐 권당 6개월씩 걸렸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 권씩 발표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 협회의 과제=98년 출간된 '드래곤 라자'(전 12권)는 한국 판타지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판매부수 100만 부 이상도 그렇지만 대만에 판권이 수출됐고, 컴퓨터 게임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이른바 문화 콘텐트로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나 한혜원 한국과학기술원 대우교수는 "특수한 몇 가지 예로 한국 대중문학이 국제적 경쟁력을 지녔다고 말하긴 힘들다"고 단언한다. "현재와 같은 악순환의 구조에선 영화.게임 등의 문화 콘텐트로 가공될 안정적인 경로가 차단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중문학작가협회는 대중문학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문화 콘텐트로의 진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대중문학뿐 아니라 게임.영화.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 전반의 살길이기도 하다.

손민호 기자

◆ 대중문학=무협.판타지.로맨스.추리.SF.밀리터리(군사소설).대체역사소설 등 장르별 문학을 통칭한다고 하여 장르문학이라고도 불린다. 문학적 가치보다는 대중적 흥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통속문학이라고도 하며, 본격문학(또는 순수문학)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한국엔 현재 2000여 명의 대중문학 작가가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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