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입장권 양보할 테니 오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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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평화의 집>
○…20일 오전 10시 57분 판문점 우리측지역의 평화의 집 회의실에서 두 번째로 대좌한 남북대표들은 전날보다 폭이 좁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전날 나누지 못한 악수를 주고받으며 반갑게 인사.
박준규 우리측 수석대표는 『어제는 책상사이가 멀어 악수를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가까워졌으니 마음의 거리도 한결 가까워졌을 것』이라며 『꼭 성사시키자』고 가볍게 인사.
전금철 북측단장도 70년대 초 우리측지역을 넘어와 회담한 적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오늘 또다시 두 동강 난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16년 동안 하나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이번에 우리가 이 분계선을 날려보내도록 하자』고 답례.
○…이한동 우리측 대표가 『요새 올림픽 입장권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우리 의원들은 두 장씩을 살 수 있었다』면서 『모두 10표를 여러분들에게 양보할 용의가 있으니 오시오』라고 초청했고 이에 전 북측단장은 『함께 가는 게 좋지 않소. 그래서 공동이란 게 좋은 게 아니요』라고 응수.
전 북측단장은 『중동 쪽엔 군축 협상이 잘되고 동독에선가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근로자 휴양소를 건립했다는 사실을 잘 음미해보자』고 했고 우리측 박 수석대표는 『평양에 우리대표 5명의 사무실을 마련해주시오』라고 농담.
김봉호·박관용·김용환 대표들은 『올림픽박두를 알리는 시청 전광판에 28이란 숫자가 표시돼있는 걸 보고 왔다』면서 『벌써 소련영사관도 서울에 들어오는 등 올림픽 개최 일이 계속 다가와 회담에 임하는 마음이 조급하기만 하다』며 회담의 성사를 다짐.
이에 대해 북한측의 전 단장은 『올림픽은 공동으로 주최해야지』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박 수석대표는 『그러면 오늘 방안을 내놓아라』고 즉각 반격.
회담분위기가 다소 긴장되자 북한측 박문찬 대표는 『분단40년 동안 쌍방이 통일을 하지 못하고 민족에게 비극을 안겨주고 있다』면서 『오늘은 서로 진지한 태도로 회담에 임해 통일에 대한 성의를 표시해야겠다』고 성과 있는 회담을 강조.
그러자 박관용 대표는 『생각이 전부 똑같은데 왜 그렇게 안됩니까』라고 회담이 진전되지 않고 있는 결정적인 책임이 북한측 자세에 있음을 지적.
이어 박 수석대표는 『내 인생에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서울을 떠났다』면서 『대폭 양보를 하든 어떻게든지 오늘 회담은 매듭을 풀어야겠다』고 우리측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
이날 비좁은 회담 장에 1백여 명이 넘는 양측 보도진으로 장내가 어수선해지자 박 수석대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장내를 정리한 뒤 본격회담을 갖자고 제의해 북한측도 이를 수락.
그러나 양측 보도진들은 회담장 옆방에 있는 기자실로 옮기지 않고 계속 열띤 취재를 했는데 이때 북측 전 단장은 엉뚱하게 과거 국회회담의 우리측 수석대표였던 권정달 전 의원에 대한 안부를 묻기도.
박 수석대표와 이한동 대표가 『개인연구실을 운영하고있다』 『최근 미국의 스탠퍼드 대학 후버연구소 연구원으로 가있다』고 소개하자 전 단장은 느닷없이 『권 선생이 과거 국회 내무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높은 자리에 있었는데 놀게 하면 되느냐』며 『그때 권 수석대표가 일을 잘못해 오늘과 같이 우리가 또 만나고있다』고 과거 국회회담이 중단되었던 책임을 우리측에 전가.
이때 이한동 대표가 그 당시 북측 수석대표가 전 단장이었음을 상기시키며 『책임의 반은 전 단장에게 있지요』라고 응수하자 전 단장은 머쓱한 표정.

<회담진행>
○…이날 회담은 우리측이 진일보한 수정안을 제시하고 이에 북한측이 한때 관심을 표명하는 등 낙관적인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북측 전 단장이 기조연설에서 연석회의를 고집하면서 우리측에 대해 비난을 가하기 시작함으로써 회담분위기는 돌변.
박 수석대표는 『복잡한 문제의 타결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보다 소수인원으로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대표회담의 성격이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회담명칭을 「대표회담」이나 연석회의가 아닌 「국회회담」으로 하자』고 수정제의.
박 수석대표는 『국회회담에서 의제에 대한 최대공약수가 도출되면 이의 통과를 위해 만세 부르는 회의를 소집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해 우리측 수정제안이 「선 대표회담-후 합동회의」임을 시사.
박 수석대표는 또 의제문제와 관련, 전날에 제의한 표현 중에서 불가침선언 「권고」라는 표현을 빼는 등 상당한 폭의 양보 안을 제시.
이에 대해 북측 대표들은 『국회회담이란 명칭을 쓸 경우 그 성격은 어떤 것인가』 『올림픽문제라고 했는데 공동주최도 포함되느냐』는 등 관심을 기울여 회담장 밖에서 스피커로 발언내용을 듣고 있던 보도진들 사이에선 『본 회담이 성사되는 게 아니냐』는 낙관적인 전망이 한동안 돌았을 정도.
그러나 기조연설에 나선 북측 전 단장이 전날의 입장을 그대로 되풀이해 고집하자 분위기는 비관 쪽으로 선회.
전 단장은 『8월 중에 연석회의가 이루어져야할 절박한 시점임에도 불구, 귀 측이 여러 가지 문제를 복잡하게 제시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민족문제를 논의하는데 연석회의가 복잡하다고 거부하면 정치인의 책무를 져버리는 것』이라고 주장.

<취재경쟁>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북측 대표단 연락관 6명은 북측 대표단이 회담장에 도착하기 전인 오전 10시 10분쯤 회담장소인 평화의 집에 들어와 준비상황을 일일이 점검.
이들은 북측 대표단이 사용할 휴게실에 들어가 북측과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를 시험 가동해 보고 회담장에서는 마이크상태·녹음시설 등에 관해서도 우리측 관계자에게 문의.
이들은 특히 회담장 앞 편을 모두 빽빽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측 기자들에게 『한쪽은 북측기자들에게 양보해 달라』고 부탁.
북측의 기자완장을 두른 보도진들은 전날보다 10여명이나 늘어난 40여명의 인원이 평화의 집에 파견돼 눈길.
그 동안 북측 판문각에서는 북측 경비병들이 시종일관 망원경으로 남쪽을 주시.
북측 기자들 중에는 홍일점으로이틀째 회담장에 모습을 보여 주목을 끌었는데 그녀는 중국 인민일보의 유민군 특파원(36).
그녀는 역시 인민일보기자인 남편 서보강씨(40)와 같이 취재에 열심이었는데 남편과 역할을 분담해 회담내용의 녹음 및 사진촬영을 담당.
이들 부부는 인민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딸과 평양 외국인 아파트에 3년째 거주하고 있다고 소개.
남편 서씨는 북한의 서울올림픽 참가문제를 묻자 간단하게 『남북공동개최가 바람직하다』고 답변.
회담장에는 이들 부부 외에도 신화사 통신의 평양지사에 근무하고있는 주극천 기자도 있었는데 그는 평양에 온지가 7년째라고 소개.
주 기자는 『대한민국과 중국간에 최근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서울방송 및 미국의 소리방송을 통해 잘 알고 있다』고 답변.
19일 접촉 때와는 달리 이날 평화의 집 회담에서는 우리측 사진기자들이 회담시작 1시간 전에 이미 자리를 잡고있어 오전 10시 30분쯤 회담장에 도착한 북측기자들의 항의로 양측은 10여분간 치열한 자리싸움을 전개.
북측은 테이블 양쪽을 모두 차지하고 있던 우리측 기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거칠게 항의했는데 북측 기자의 인솔자는 양보하지 않으면 회의를 못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해 테이블 쪽에 위치하고있던 우리측 기자들이 앞자리를 양보하는 선에서 타협.
이날 북측에서는 기자 및 보조인원을 합쳐 모두 51명이 왔는데 그중 기자 등은 32명으로 이는 우리측의 4분의 1정도.

<전략회의>
○…이에 앞서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아침 일찍 삼청동 남북대화 사무국에서 이홍구 통일원 장관과 남북대화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찬회의를 열고 약 1시간동안 전략을 숙의.
이 회의에서는 19일 북측이 보였던 입장과 자세를 면밀히 분석 검토한 뒤 이날 우리측이 제의할 방안을 마련했는데 1차 접촉에서 우리측이 역점을 두어야 했을 올림픽문제보다는 북측이 들고 나온 불가침문제가 더 많이 논의됐다는 분석을 내려 2차 접촉에서는 올림픽문체를 중점적으로 논의키로 결정.
남북대화의 전략전문가인 한 관계자는 19일 1차 접촉에 나타난 북측의 전략을 설명하면서 『북측의 기본적인 의도는 불가침문제를 자꾸 거론해 군사문제를 쟁점화 시키고 남북 국회회담을 그 논의의 마당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분석.
이 관계자는 『불가침 문제는 결국 저들이 주장한 주한미군 철수와 핵 문제로 자연히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북측의 계산』이라고 설명.
이 관계자는 『오늘 타결이 안되더라도 우리측은 차후접촉을 다시 제의할 것』이라고 말하고 『최소한 3차 접촉까지는 갈 것으로 본다』고 전망.

<판문점=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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