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안의 조선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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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금으로부터 조선어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중앙아시아 카자흐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의 거리를 달리는 김은국 교수의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소리다. 지난 16일 방영된 KBS-TV의 『소련 땅의 한인을 찾아서』는 소련 땅 오지에 강제 이주해온 한인 10만명의 생활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반세기여를 조국을 떠나 산 그들의 아픔과 설움이 전달되면서 그래도 밝은 모습으로 소월의 시를 암송하고『돌아와요 부산항에』 를 멋지게 불러 젖히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고마움마저 느낄 수 있었다.
해외교민이 가장 많은 지역은 역시 중국이다. 1백 80만명이 살고있는 중국에서, 그중 80여만명이 길림성의 연변조선자치주(옛 북간도)에 모여 있다. 북미 이민을 그렇게 많이 갔다해도 통틀어 1백만 명이라니 중국 속의 한인숫자는 놀라울 수밖에 없다.
많은 여행자들이 전해주듯, 연길시의 한인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한글을 쓰고 한국어를 말하며 한인들과 결혼한다. 이주의 역사가 가장 오랜 곳이면서도 아직껏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하고 치마 저고리가 평상복이며 전통적 기와집이나 초가집에서 생활한다.
무엇이 이들을 문화적으로 결속시켰고 무엇 때문에 이들은 굳이 조선인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이채진 교수는 최근 발간된 『중국 안의 조선족』에서 그 원인을 소수민족에게 유리하고 관대한 중국의 소수민족정책과 한인들의 치열한 교육열에서 찾고있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서 조선족이 최고의 교육수준을 자랑하고 있고 지적, 문화적 활동에서도 강한 민족주의 의식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 인민일보나 북경주보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보도된 적도 있었다.
고교졸업생의 4%만 대학진학이 가능한 중국에서 모든 한인2세들의 꿈은 『대학에 가고 싶다』에 몰려서 부모들은 소와 땅을 팔아야될 만큼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다. 북간도 시절의 광명중학이나 신흥학교의 학맥이 연면히 내려오는 전통 탓도 있겠지만, 이국의 자손들에게 전통문화를 전달하는 중개자 역할을 스스로 맡고 나선 부모들의 의지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언어관습과 사회관습을 지키면서 잡혼을 엄격히 금지해온 연변의 동포 부모들로부터 우리는 또 깊은 감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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