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아픈 게 직업」인 사람|이시형<고려병원·신경정신과장>(2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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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아픈 게 직업인 사람이 있다. 부자나라에선 직업적 환자가 적지 않다. 전상으로 의병 제대한 상이군인이 대표적이다. 제대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도 공 상병의 악화로 입원하게 되면 그날로 봉급 전액이 국가에서 지급된다. 일 않고도 월급이 나오니 참 좋은 직업이다. 몇 년이고 병원에서 그냥 지내는 전문적 환자도 많다.
낫고 싶지가 않다. 증세가 좋아진다 싶어 퇴원이야길 꺼내면 그날 밤 다시 엉망이 된다. 또 연기다. 이러길 몇 년을 되풀이한다. 편히 누워 빈둥거리면서 극장도 가고 주말여행도 즐긴다. 나아야 할 이유가 없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직업이 달리 없을 게다.
물론 이건 잘 사는 나라의 특수한 이야기다. 그러나 비슷한 심리적 배경을 갖는 직업적 환자는 어느 나라, 어느 가정에서도 볼 수 있다.
김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국민학교 때부터 자주 골치를 앓았다. 아프면 우선 학교에 안가도 된다.
집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 신경 건드리지 않도록 가족들도 모두 조심한다. 공부를 안 해도 누가 뭐랄 수 없다. 기분전환 한답시고 구경도 다닌다. 이 정도 특혜는 보통 아이들에겐 어림없는 일이다. 이제 그에겐 아픈 게 일과처럼 되었다.
골이 안 아프면 배가 아프다. 겨우 고등학교는 졸업했지만 대학진학은 엄두도 못 낼 형편이었다. 기술을 배운답시고 이것저것 손 대보았지만 그놈의 골치가 재발하는 통에 아무 것도 끝낼 수가 없다. 나이서른에도 백수건달이다. 그의 골치는 이제 이 집 전체의 골치가 되었다. 이젠 가족도 지쳤다. 어디론가 쫓아 버리고 싶다. 하지만 병원밖엔 갈 곳이 없다. 입원하고 나니 우선 그 꼴 안 봐 가족도 편하다. 환자도 싫지 않다. 일석이조의 효과다.
가족 역동(심리적 관계)이 이렇게 돌아가면 그는 본격적 직업환자로 변모되어 간다. 가족 측에서도 의식·무의식적으로 그의 병을 조장한다. 나을 리가 없다. 좋아져 집에 외출을 보내면 싸우고 돌아오는 통에 증상이 악화된다. 그래서 그는 아파야 한다. 퇴원 당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아파야 한다.
환자로서의 직업이 몸에 밴 이들은 아픈 역할을 잘도 해낸다. 어느 정도 어떻게 아파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숙달된 환자다. 의료진의 기분도 잘 맞춘다.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낫고 그리고 재발하고…. 가족과 의사, 그리고 환자자신 사이의 균형을 잘 조화시켜 나간다.
최근엔 교통사고 재해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직업적 환자도 꽤나 많이 생겼다. 여기엔 보험회사와의 균형도 맞추어야 하니 복잡하긴 하지만 몇 년을 직업적 환자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억울한 사람도 물론 많겠지만.
환자가 직업이 되기 위해선 누군가가 돈줄이 든든해야 한다. 나라든, 가정이든, 보험회사든 누군가 이 환자를 위해 돈을 내놓아야 한다. 싫어도 내야 한다. 그래서 직업적 환자는 현대사회의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전문직이지만 하찮은 병으로 자주 쉬어야 하는 사람도 심리기전에서는 직업적 환자다. 세상에 치사하고 더러운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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