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위활동이 우려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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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렵사리 출범한 국회특위들이 이제부터는 본격 가동되는가 했더니 또 난항을 겪고 있다. 5공비리특위는 여야간에 조사대상을 합의함으로써 구체적인 활동에 들어갈 단계까지 갔다가 전두환 전대통령 일가 등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을 야당이 일방적으로 단독 의결해 다시 여야대치국면으로 빠져들었다. 광주특위도 최규하 전대통령의 증인채택문제와 위원장의 일방적인 전미대사 등의 증언요청 문제로 여야이견을 풀지 못하고 있다.
5공 특위에서 야당측이 13대 국회들어 처음으로 단독강행을 한데 반발해 민정당측이 야당비리의 조사대상 포함 등 강경대응으로 나설 조짐을 보여 과연 이런 식의 강경대 강경으로 나가다가는 정작 비리조사는 어느 세월에 하게 될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야당이 비리조사를 위해 필요한인물의 출국금지를 요청하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출국금지 대상자의 범위나 요청시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지 모르나 여당측도 필요한 인물의 출국금지 조치의 필요성 자체는 반대할 수 없을 것이요, 반대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하면서 왜 여당이 불참하고 야당이 일방적으로 강행해야만 했던가 하는 점이다. 야당측은 여당의원들의 출석을 독려했지만 나오지 않아 표결했다고 하지만, 더 절충하고 타협할 소지나 시간여유가 없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과거 야당이 소수파였을 때 여당의 단독강행을 규탄한 똑같은 논리가 지금 여당측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한것처럼 출국금지요청 자체는 필요하고 국민의 공감도 얻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좋은 목적의 관철을 위해서는 아무런 수단이나 과정의 동원도 다 정당화된다고는 할 수 없다. 이번 처사는 스스로 그토록 다짐한 대화와 타협의자세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단독강행의 배경에서 느끼게 되는 당략적 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당이 광주특위에서 힘을 발휘하고, 어느 당은 5공 비리에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식의 야당간의 경쟁심리, 선명성 과시 등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당략적 협원에서 비리조사를 한다면 진상규명도, 5공화국 청산작업도 제대로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정치적 인기품목에 조사를 집중한다거나 여론의 관심에 따라 조사가 왔다갔다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당측도 더이상 특위활동에 어물쩡한 입장을 취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리와 의혹이 있는 이상 밝히지 않고 언제까지고 깔아뭉개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밝히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말한 것처럼 「성역」의 존재가 있을 수 없고, 필요한 인물이면 누구나 조사하고 증언을 들어야함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밝히기 위한 구체적 방안이나 대안은 내놓지도 못하면서 전대통령은 안된다, 누구는 곤란하다 하는 식으로 비호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누가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민정당은 계속 이렇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가다가는 광주진상과 5공 비리를 밝히라는 여론의 바다에서 점차 고립된 섬처럼 당의 처지가 오그라들 것임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특위활동에서 정치적 득실보다는 진상규명자체를 일의적으로 고려하고 얽히고 설킨 인맥의 연보다는 공인의 도리를 우선하는 자세를 취할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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