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있는책읽기] 비교·분석은 도시의 삶…자연엔 비유가 숨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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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분 1초를 다투며 새 제품이 생산되고 새 가게가 문을 여는 도시에서는 비교와 분석의 방법이 지혜로운 삶의 수단이 된다. 어디가 더 쌀까, 어느 길이 더 빠를까, 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득이 될까, 쉬지 않고 대차대조표와 순서도를 짜면서 하루를 보낸다. 자연은 어떤가. 몇 미터, 얼마 어치라고 잘라 말할 수 없는 자연의 은은한 차이를 보려면 '이 풀즙은 애기 똥 같구나, 저 나무 냄새는 노루오줌 같구나' 하는 식으로 비유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또 강렬한 자연의 신호를 지켜보노라면 상징을 이해하는 힘이 생기게 된다.

순발력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도시 생활은 전제로부터 확실한 결론을 빠르게 이끌어내는 연역 논리를 키워준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살다 보면 유비 논리를 통해 더 쉽고 풍부하게 사실을 설명하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 '자연의 이야기들'(쥘 르나르 글, 윤정임 옮김, 베틀북)은 자연이 숨겨둔 비유와 상징의 단서를 콕콕 찾아내 보여주는 책이다. '홍당무'의 작가인 쥘 르나르는 나이 마흔에 어린 시절 자랐던 쉬트리 마을 촌장이 된다. 쉬트리에서 만난 크고 작은 존재들은 모두 그의 시가 됐는데, 그 가운데 몇 편을 그림책으로 엮은 것이다. '반으로 접힌 사랑의 편지가 꽃의 주소를 찾고 있어요(나비)' '용수철이 달려 톡톡 튀어 다니는 담뱃가루(벼룩)' '여기도 3, 저기도 3, 끝없이 이어지는 33333...(개미)' 등 무릎을 칠 만한 비유가 가득하다.

부모나 교사는 같은 제목의 완역본(박명욱 옮김. 문학동네)을 읽고 이 재미난 '빗대어 생각하기'의 세계에 함께 들어서는 것도 좋겠다. 동.식물 도감과 함께 읽으면서 사실과 비유의 차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증명의 논리, 연역 논리에만 길들기 쉬운 현대 어린이들에게 유비 논리의 세계를 열어줌으로써 깊은 생각에도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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